“지내보시면 알겠지만, 15분 외출 제한 안 지켜도 제재할 법이 없어요. 정부에서도 강제할 수가 없는 거죠.”
19일 일본 도쿄 시내의 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한 방을 안내하던 호텔 직원이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건넸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출국 전부터 수차례 안내했던 대로, 입국 다음날부터 3일 동안 겪어야 할 격리에 대해 굳은 각오를 하고 있던 터였다. 입국 과정에서도 코로나19 검사를 포함한 엄격한 확인 절차를 수차례 거쳐야 했기에 하루 한 번, 그것도 15분 동안 편의점 등 주변 시설을 이용하는 용도로만 허용된다는 외출 시간도 철저히 지켜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각오는 호텔 문턱에 발을 디디는 순간 깨졌다. 심지어 호텔 직원은 숙박할 방을 안내하면서 각종 꿀 팁(?)까지 알려줬다. “외출할 때 호텔 로비에 이름을 적도록 안내하는데, 안내하시는 분도 사실 투숙객들이 프레스증을 착용하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이름 적지 않고 나가서 바깥 음식점 이용해도 모르는 거죠. 이름을 적더라도, 15분씩 원하는 만큼 얼마든 외출할 수 있어요.”
언론사들이 묵는 ‘미디어 호텔’만의 문제는 아니다. 선수들과 접촉이 더 잦을 수밖에 없는 핵심 관계자들이 묵는 숙소에선 ‘15분 외출’ 원칙이 더욱 유명무실한 듯하다. 배구 종목 심판들은 경기가 열리는 아리아케 아레나 근처 호텔에 단체로 묵는데, 외출이 ‘재량껏’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배구 올림픽 심판으로 도쿄에 도착한 강주희 국제심판은 “호텔 로비에 명부 작성을 안내하는 관리인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외출 시간을 적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대회 개막 전 수십 명의 올림픽 관계자들이 코로나19에 확진돼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방역 공백’은 어쩌면 예고된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 13일 문을 연 선수촌에선 20일 기준 코로나19 확진 선수가 3명으로 늘었다. 이 밖에도 일본에 입국한 대회 관계자 1명과 자원봉사자 1명 등 7명이 코로나19에 추가 확진되면서 도쿄조직위가 집계 중인 대회 관련 확진자가 모두 67명으로 늘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19일 ‘개막을 앞두고 코로나와 스캔들에 일격 당한 도쿄올림픽’이란 기사를 냈을 정도다.
그런 가운데 일본 관계 기간들은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닛칸스포츠의 20일 보도에 따르면 전날 개최된 청문회에서 일본 야당 의원들은 올림픽을 관장하는 일본 내각관방 측에 ‘15분 외출’ 규칙의 결함을 질책했다. 현장 감독자들의 역량 부족으로 사실상 외출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단 것이다. 입헌민주당의 야마이 가즈노리(山井和則) 의원은 “지금까지 총리나 정부가 설명한 것과 실제 상황엔 괴리가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내각관방 관계자는 “15분 외출 규칙을 백지로 되돌리고 재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약 5만명에 달하는 선수 이외 올림픽 관계자들의 입국이 전면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 자신과 도쿄조직위가 함께 기획한 ‘버블 방역 시스템’의 구멍을 뒤늦게 인정한 꼴이다.
15분 외출을 금지하더라도 코로나19 방역이 완벽히 기능할 수 있을 진 의문이다. 19일과 20일에 걸쳐 실제 15분 외출을 해보니 일본 거리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일본 일반인들의 모습이 10명에 2~3명꼴로 목격됐다. 올림픽 참가를 위해 방문한 듯 보이는 외국인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긴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마스크 착용은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라고 하니, 말 다했다.
도쿄=글·사진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