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기호(49)씨가 대한민국예술원의 전면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앞서 이 작가는 한 문학잡지에 예술원을 비판하는 단편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20일 전화 통화에서 예술원 문제를 꺼낸 이유에 대해 “문단 내부의 일이고 다 아는 분들이기도 해서 고민스럽긴 했지만 상식과는 너무 동떨어진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어서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술원에 대해서는 문단 내부에서 오래 전부터 비판이 있었지만 공론화가 좀 어려웠던 것 같다”면서 “선배들은 예술원 회원에 대한 질투나 시기로 비판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데, 저같은 경우는 아직 그럴 경력이 아니기 때문에 얘기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국민청원을 올린 이유에 대해서는 “소설만 써놓고 빠져나오는 게 부끄러웠다. 책임을 좀 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예술원의 존재에 대해서 문인들도 잘 모르니까 국민들은 더 모르지 않겠나. 국민들이 이 문제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고 했다.
이 작가는 지난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대한민국예술원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과 대한민국예술원법 개정, 대통령령의 개정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문화예술 예산이 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연간 32억원이 넘는 돈이 예술원에 들어가고 대부분은 100명 회원에게 지급하는 월 180만원의 정액수당으로 쓰이고 있다면서 “상위 1%에게 한 나라의 문화예술 예산이 집중되어 있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신인 예술가들의 삶이 피폐해져 있고,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축소·지연되는 상황을 언급했다. “독일이나 프랑스, 미국의 경우 국가가 나서서 예술원 회원에게 정액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점, 예술원 신입 회원 선출 방식이 “철저하게 기존 예술원 회원들의 심사와 인준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작가는 “대한민국예술원법 개정과 대통령령으로 정한 회원에 대한 수당과 연금 지급 항목(대한민국예술원법 제7조)을 개정해주시기 바란다”며 “대한민국예술원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으로 우리나라 문화예술 예산의 효과적인 분배, 신인예술가들에 대한 더 든든한 지원, 예술 분야의 부조리와 모순을 개선해주시기 바란다”고 국민청원을 마무리했다.
이 작가의 국민청원 글은 앞서 격월간 문학잡지 ‘Axt(악스트)’ 7·8월 호에 발표한 보고서 형식의 단편소설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요약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1954년 설립된 예술원의 역사를 짚어가면서 “예술원의 최초 설립이 반공 문예조직의 국가적 공적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자 권리 주장이 현실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함”이라고 지적했다.
예술원의 회원 선출 방식과 예우 문제뿐만 아니라 예술원 사업인 대한민국예술원상의 폐쇄적인 결정 구조, 예술원이 청사를 가지고 있고 사무국에 공무원 13명이 근무하고 있는 점 등도 문제로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대한민국예술원은 문학, 미술, 음악, 연극·무용·영화 4분과와 사무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100명 정도의 회원으로 구성됐다. 이 회원들의 자격은 ‘예술 경력이 30년 이상이며 예술 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사람’으로 법에 규정되어 있으며, 회원의 임기는 평생, 회원에게는 매달 180만원의 정액수당이 지급된다.
이 작가는 “작년 우리나라 문학 관련 예산에 대해 천천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문학 쪽 예산은 정말 미미한 수준인데, 도무지 뭘 하는지도 알 수 없는 대한민국예술원에는 2020년 32억6500만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2021년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특수예우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국민청원을 시작으로 예술원 법 개정 운동에 나서볼 작정”이라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메일도 보내고, 1인시위도 하고, 뭐든지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지난해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상을 거부했는데, 후배 작가인 김금희씨가 상을 거부하고 혼자 싸우는 거 같아서 힘을 좀 실어주려고 거부 사실을 공개했다”고 얘기했다.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이 작가는 ‘최순덕 성령충만기’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차남들의 세계사’ 등 익살과 풍자가 가득한 작품으로 유명하며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