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시행으로 재택근무가 다시 활성화되자 식료품 등을 사두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대형마트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 등에서는 출입자명부(QR코드 인증 포함)를 작성하고 있지 않아 자칫 코로나19 ‘확산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재택근무에 앞서 식료품을 구비하기 위해 지난 17일 서울 구로구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직장인 홍모(29)씨는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홍씨는 이날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한 뒤 마트를 빠져나가기까지 약 1시간30분을 머물렀다. 마트 곳곳을 누비면서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고, 일부 진열대에서는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1분 이상 1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서 있기도 했다. 계산대에서는 10분 이상 앞뒤 사람과 거리두기를 하지 못한 채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대형마트가 말 그대로 ‘3밀(밀폐·밀집·밀접)’ 조건을 갖춘 곳이라는 불안감이 든 것이다.
홍씨를 포함한 방문객들은 대형마트에 들어서면서 발열체크만 했을 뿐 QR코드 인증이나 명부작성 등의 방역 조치는 거치지 않았다. 홍씨는 20일 “대형마트에서 감염자가 나오더라도 명부 작성도 이뤄지지 않아 내가 밀접 접촉자라는 사실조차 모를 것 같다”고 우려했다.
대형마트는 현재 방문자 명부 작성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업종에서 빠져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의 종합소매업(300㎡ 이상)은 출입자명부 작성이 의무가 아니다. 마스크를 착용했는지 확인하고 체온 측정 조치만 이행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확진자가 마트에서 장시간 머무르더라도 같은 시간대에 마트를 방문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깜깜이 확산’의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방역당국은 대형마트 내 명부 작성 의무화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방문객이 대형마트 입구에서 QR코드 인증을 하느라 머무르면서 혼잡해지는 ‘병목현상’을 우려해서다. 또 명부 작성 의무화는 추적을 위한 일종의 사후대책이기 때문에 감염 확산이 뚜렷하지 않은 대형마트 내에서 선제 대응 필요성은 적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마트와 동일하게 의무 작성 대상에서 제외된 백화점에서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하면서 방역당국의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역당국은 백화점 방문객을 특정하지 못해 뒤늦게서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방문객일 경우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안전안내문자를 보내야만 했다.
전문가들은 대형마트의 경우 실내가 넓어도 창이 없어 환기가 어렵고, 마스크를 벗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푸드코트와 매장 간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에 명부 작성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QR코드를 인증하는 시간은 크게 들지 않는다”라며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 대규모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역학조사 측면에서 QR코드 등 출입자명부 작성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