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서울중앙지법은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죽은 고양이 주인에게 병원이 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고양이가 알약을 먹던 중 간호사 실수로 플라스틱 주입구를 삼키게 됐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수술이 고양이에게 큰 스트레스를 줬다는 취지였다. 앞서 고양이 주인은 병원 측이 17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청구했었다.
그간 반려동물이 불의의 사고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주인이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이 소액이라는 불만이 제기돼왔다. 이는 현행법상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소송에서도 이 같은 법 규정이 적용된다. 법무부는 19일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손해배상 배상액 혹은 동물학대 처벌 수위 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1 한국반려동물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604만 가구로 전체의 29.7%를 차지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1448만명이다. 반려동물을 사실상 가족처럼 생각하는 가구가 대폭 증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지위는 여전히 물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법무부는 이런 국민의 인식 변화를 법제도에 반영하기 위해 민법 조항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법무부는 그간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 주요 해외법을 참고해왔다. 현행 민법은 물건을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으로 규정하고 동물은 이중 유체물로서의 물건으로 취급돼왔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동물은 물건이 아닌 동물 그 자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 다만 사람처럼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며 물건과 별개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민법 조항이 변경된다고 해서 당장 동물의 지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무부는 “동물학대 처벌 혹은 동물이 입은 피해에 대한 배상 정도가 국민의 인식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이 물건 지위에서 벗어나는 만큼 동물보호나 생명존중을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제도가 제안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법무부는 향후 동물을 강제집행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도 논의 중이다. 현재 다른 사람이 소유한 동물을 다치거나 죽게 했을 때 형법상 재물손괴죄가 적용된다. 법무부는 장기적으로 동물과 관련한 재물손괴죄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법무부는 다만 이번 민법 개정이 동물이 사람을 무는 등 피해를 줬을 경우 처벌 혹은 배상액의 상향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개가 사람을 물거나 다치게 했을 경우는 맹견 관리 등 이것과는 별도로 논의돼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동물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는 민법에 규정하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향후 판례 등으로 구체화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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