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베네수엘라 견제 위해 모이즈 방미 초청
바이든 행정부, 모이즈 임기 연장 지지하며 지원
“신망 받는 야권 지도자 부재…대안 없었다” 반론도
뉴욕타임스 “미국, 자국 이익 위해 독재자 용인”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독재자를 비호했다가 아이티 사태를 맞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시간)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카리브해의 빈국 아이티의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은 지난 7일 괴한들의 총격에 피살됐다. 정치 혼란에 시달렸던 아이티는 모이즈 대통령의 피살로 더욱 극심한 혼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NYT는 12명 이상의 전·현직 미국 정부 당국자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동맹의 ‘독재자(Strongman)’를 지지하는 미국의 습관이 아이티에서 혼란을 야기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모이즈 전 대통령은 2016년 아이티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부정선거 논란이 터져 나오면서 그는 예정보다 1년 늦은 2017년 2월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됐다. 야권은 모이즈 당시 대통령에게 대선 5년 뒤인 올해 2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임기가 2017년에 시작됐다”면서 내년까지 대통령 자리를 지키겠다고 반박했다.
아이티에선 모이즈 당시 대통령 퇴진 시위가 올해 초부터 촉발되면서 정국이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모이즈 당시 대통령의 강압적인 통치도 큰 반발을 샀다. 이런 와중에 괴한들의 총격에 그가 숨진 것이다.
특히 아이티의 정치적 위기는 미국 입장에서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아이트는 불과 700마일(1127㎞) 떨어져 있다. 아이티의 혼란 상황이 계속될 경우 대규모 난민 유입이 미국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NYT가 비판한 핵심은 미국 정부가 모이즈 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아이티 상황을 방치하다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2019년 3월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 별장인 플로리다주의 마러라고 리조트에 아이티·도미니카 공화국,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국가 정상들을 초대한 사례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중미의 대표적 반미(反美) 국가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이들 정상들을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 정당성이 부족했던 모이즈 당시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초대를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했고, 그의 독재는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 NYT의 지적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 의회 내 일부 의원들이 모이즈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통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모이즈 전 대통령이 1년 임기를 더 하는 방안을 지지하면서 공개적으로 지원했다.
NYT는 미국 정부가 정치적 혼란을 겪는 아이티에서 독재자를 지원하는 가장 쉬운 길을 택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신변의 위협을 느낀 모이즈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암살 위협을 호소했지만 이를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고 NYT는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변명거리는 있다고 NYT는 전했다. 아이티에서 국민들의 신망을 받고, 뛰어난 비전을 제시하는 다른 지도자가 보이지 않았던 탓에 모이즈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아무리 소국이라고 해도 아이티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NYT는 설명했다.
그러나 NYT는 “비판론자들은 아이티 사태에 대한 접근법은 미국이 수십 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보여줬던 각본을 그대로 따랐다고 말한다”면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독재자들이 사라질 경우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독재자들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용인했다”고 날을 세웠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