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에서 28년 만에 여성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팔레드페스티발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프랑스 여성 감독 쥘리아 뒤쿠르노(37)의 ‘티탄’이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다.
‘티탄’은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머리에 티타늄 조각이 남게 된 여성, 인간과 자동차의 사랑, 의문의 연쇄살인 등을 그린 스릴러 영화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됐지만 ‘티탄’은 극단적인 폭력성 탓에 심사위원들이 긴 토론을 거쳤다고 AP통신 등은 전했다. 뒤쿠르노 감독은 “괴물을 받아들여 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칸 영화제에서 여성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수상자는 1993년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감독이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뒤쿠르노의 수상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이라면서 “최근 수 년간 칸영화제의 성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돼 왔다”고 짚었다.
2018년에는 아녜스 바르다, 케이트 블란쳇 등 여성 영화인 82명이 레드카펫에서 성평등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82’라는 숫자는 1946년 칸 영화제가 시작된 후 초청된 여성 감독의 수를 말한다. 같은 기간 남성 감독이 1645명 초청된 점과 비교해 턱없이 적은 숫자를 강조한 것이다.
뒤쿠르노 감독은 “솔직히 내가 받은 상이 내가 여성인 점과는 관련이 없길 바란다”면서도 “내가 이 상을 받은 두 번째 여성이기 때문에 제인 캠피온이 수상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많이 생각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성 수상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칸영화제에선 여성 감독들이 주요 부문 최고상을 휩쓸었다. 단편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세상의 모든 까마귀들’의 탕이 감독, 주목할만한 시선 그랑프리 수상작 ‘움켜쥐었던 주먹 펴기’의 키라 코발렌코 감독, 황금 카메라상 수상작 ‘무리나’의 안토네타 알라맛 쿠시야노비치 감독이 모두 여성이다.
한국 작품은 초청받지 못했지만 경쟁 부문에 오른 아시아 영화 세 편이 모두 수상하는 성과도 있었다. 이란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영웅’은 심사위원대상을, 태국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메모리아’는 심사위원상을 공동 수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각본상을 받았다.
영화 ‘비상선언’의 월드 프리미어로 참석한 송강호는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이병헌은 시상자로 자리를 빛냈다. 여우주연상 시상에 나선 이병헌은 “이곳에 와서 무척 기쁘고 수상자 모두 축하드린다”면서 “이번 영화제는 내게 아주 특별하다. 내 동료인 봉준호가 영화의 개막을 알리고, 송강호가 심사위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