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값 시비 폭행에 대법 “강도상해죄 적용 안돼”

입력 2021-07-18 12:17 수정 2021-07-18 17:21

술값을 내지 않기 위해 주점 직원들을 폭행했더라도 불법이득 의사가 없었다면 강도상해죄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경기 남양주시의 한 주점에서 15만9000원 상당의 술을 마시고 2만2000원만 냈다. 이에 주점 직원들은 나머지 술값을 요구했고, A씨는 붙잡는 직원들을 수차례 걸쳐 폭행했다. 수사기관은 A씨가 폭행으로 술값 요구를 단념하게 함으로써 13만7000원의 재산상 이익을 취했다고 보고 A씨에게 강도상해 혐의를 적용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술값을 내지 않기 위해 폭행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는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도죄의 재산상 이익은 외견상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사실관계만 있으면 된다”며 “A씨가 일시적으로 술값 채무를 면한 것도 강도죄의 성립 요건인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고 했다.

2심도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으로 폭행함으로써 술값을 면하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강도상해 혐의를 유죄로 봤다. 다만 A씨가 범행으로 취득한 재산상 이익이 크지 않은 점, 재판 과정에 A씨가 피해자들과 합의하고,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을 참작해 징역 3년 6개월로 감형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의 판단에는 A씨가 주점 직원들에게 폭행을 가한 뒤 경찰관이 주점에 도착할 때까지 현장에 있었던 점, 주점 방문 전에 다른 노래방 등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술값을 결제한 점 등이 고려됐다. 피해자들이 바닥에 쓰려져 있는 상황에서 술값을 내지 않을 의사가 있었다면 현장을 벗어나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강도상해죄가 성립하려면 먼저 강도죄의 성립이 인정돼야 하고, 강도죄가 성립하려면 불법영득 또는 불법이득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며 “A씨가 폭행할 당시 술값 채무를 면탈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