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선수촌에 입촌한 대한민국 선수단이 내건 ‘이순신 장군’ 현수막의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13일 공식 개장한 올림픽 선수촌에 입촌해 우리 선수들이 머무는 층에 ‘신에게는 아직 5000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한글 현수막을 걸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맞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패러디 한 문구다. 이순신 장군은 ‘상유십이 순신불사’(아직도 제게 열두 척의 배가 있고, 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라는 글을 선조에게 올리고 역사에 길이 남을 명량대첩을 이끌었다.
현수막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이어받아 도쿄에서도 선전하겠다는 내용으로 국내 네티즌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한 일본 신문이 이를 정치적인 메시지로 해석해 ‘반일 현수막’이라고 낙인을 찍자 걷잡을 수 없이 파문이 커졌다. 이순신 장군이 한국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에게 맞선 ‘반일 영웅’으로 신격화한 존재여서 반일 현수막이라고 생트집을 잡은 것이다.
급기야 일본 극우 정당인 일본국민당 관계자들이 16일 올림픽 선수촌 한국 거주동 앞에서 전범기인 욱일기를 들고 기습 시위를 펼치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한국의 어리석은 반일 공작은 용납할 수 없다”며 “한국 선수단을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 사안과 관련한 일본 정부의 대응 등을 묻는 말에 “선수촌 관리는 대회 조직위원회가 적절히 대응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도쿄 대회의 모든 참가자가 올림픽·패럴림픽 정신에 따라 행동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순신 장군 현수막’이 마치 올림픽 정신에 어긋난다는 취지로 들릴 여지가 있었다.
올림픽 개막을 7일 앞두고 이번 사건이 한일 두 나라의 정치·외교 문제로 비화하기 전에 ‘스포츠를 통한 평화’를 강조해 온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개입할지에 시선이 쏠린다. 그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독도 자국 영토 표기 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일본 편을 들어온 점에 비춰볼 때 IOC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