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북부에서 중국인 근로자를 태운 버스가 폭발해 9명이 사망한 데 대해 중국 관영 매체가 테러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고가 발생한 카이버·파크툰크와주(州) 어퍼 코히스탄은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경계에 있는 산악지대로 평소 지역 테러 조직의 활동이 빈번한 곳이다. 중국은 파키스탄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면서 중국은 반파키스탄 세력의 공격 타깃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 외교부와 외신 보도에 따르면 14일(현지시간) 오전 어퍼 코히스탄에서 중국인 근로자와 파키스탄 근로자 등 수십 명이 탑승한 버스가 달리던 중 폭발해 계곡으로 굴러떨어졌다. 이 사고로 중국인 9명이 사망하고 30명 가까이 다쳤다. 파키스탄 국적 3명도 숨졌다. 이들은 중국 기업이 파키스탄에 짓고 있는 다수 댐 수력 발전소 건설 현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파키스탄 외교부는 이날 오후 “중국인 근로자를 태운 버스가 기계 고장에 따른 가스 누출로 폭발해 계곡 아래로 추락했다”며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파키스탄 주재 중국 대사관은 조속한 진상 규명과 함께 보안 인력 강화 등을 요구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사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중국 전문가들은 테러 공격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첸펑 칭화대 국가전략연구소 실장은 15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카이버·파크툰크와주는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파키스탄 탈레반의 본거지이기 때문에 정세가 매우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몇 년간 테러 조직들은 파키스탄 내 중국 프로젝트를 타깃으로 삼고 기업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공격하기 시작했다”며 “그들은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파키스탄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7년 5월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에서 중국인 2명이 경찰을 가장한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돼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 4월에는 파키스탄 탈레반이 발루치스탄주 퀘타의 한 호텔에서 폭탄 테러를 자행해 4명 넘게 숨졌다. 당시 호텔에는 농롱 파키스탄 주재 중국대사가 투숙하고 있었지만 테러 발생 때는 자리에 없어 화를 면했다.
중국이 걱정하는 건 또 있다. 미군 철수로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아프간에는 반파키스탄 단체가 적지 않다. 앞으로 아프간 정세가 불안해지면 이들 단체가 파키스탄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은 중국과 파키스탄의 경제회랑(CPEC) 건설 프로젝트에 타격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CPEC는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으로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지역 도시 카스와 파키스탄 남서부 과다르항을 철도, 도로, 송유관 등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리웨이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대테러 전문가는 사고가 난 버스가 구식이라 통제 불능 상태였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중국 사업은 군과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며 “차량에 탑승하는 사람은 엄격한 보안 검사를 받기 때문에 누군가 폭탄을 지니고 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