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진격하듯 국민의힘 입당을 택하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독주를 이어가던 야권 대선 지형이 격변을 맞게 됐다. 최 전 원장은 조기 입당으로 당내 지지기반 확보를 위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됐다. 이른바 ‘제3지대론’은 상당부분 동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 전 원장은 ‘지지율 10%’ 돌파와 안팎의 공세를 뚫고 유력 대선 주자로 안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 전 감사원장은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이준석 대표 등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입당환영식에서 모바일로 입당 절차를 완료했다. 이 대표가 건넨 명함 뒤에는 입당신청 화면으로 연결되는 QR코드가 있는데, 최 전 원장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이를 직접 찍어 입당 신청을 했다. 이후 이 대표가 직접 당원이 된 최 전 원장에게 당 배지를 달아줬다.
최 전 원장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입당식에 참여해주시고 축하해주신 데 정말 감사드린다”며 “여러 당원 동지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우리 국민의힘이 정권교체, 나아가서 보다 나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입당 소감을 밝혔다.
최 전 원장의 일사천리 입당은 후발주자로서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해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최 전 원장은 “어젯밤 밤새 고민하며 결정했다”고 말했다.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라는 든든한 자산이 있는 윤 전 총장과 달리, 뒤늦게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최 전 원장에게는 당장 내세울 무기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제1야당의 정당 조직 및 시스템의 도움 없이는 대선을 뛰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최 전 원장에게 윤 전 총장과 비교해 뭐가 더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며 “결국 국민의힘 입당 말고는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 원장 측 관계자도 “입당 문제는 길게 고민한다고 100점짜리 해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며 “더 늦어지면 ‘간보기’라는 지적이 나왔을 것”이라고 조기 입당 배경을 설명했다.
또 과거 유력 대권 후보였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고건 전 국무총리가 조직력 부재 등에 직면하면서 결국 불출마를 선언한 사례도 최 전 원장이 반면교사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최 전 원장은 조기 입당으로 윤 전 총장과의 차별화도 성공했다. 윤 전 총장 입장에서는 국민의힘 입당 압박이 커졌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과 거리를 두고 외곽에서 정처없이 독자행보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이 법치와 공정 등 이미지가 겹치는 상황에서, 최 전 원장이 입당 카드로 승부사적 인상을 주고 판을 흔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최 전 원장은 명확한 정치 로드맵을 보여줬다”며 “국민이 간보기 정치에 질린 상황에서 우왕좌왕하지 않는 최 전 원장 모습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전 원장은 조기 입당으로 당내 지지 기반 확보에는 유리해졌지만, 인지도를 높여 지지율이 상승세를 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입당 후에도 ‘지지율 10%’ 벽을 넘지 못한다면 대선 주자로서 최 전 원장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
최 전 원장은 공식 대선 출마 선언 준비와 캠프 구성 등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캠프 사무실은 여의도 국회 인근으로 물색 중이다.
이상헌 손재호 강보현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