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맛 이준석, 100분 만에 탱자됐다” 지원금 합의 후폭풍

입력 2021-07-14 06:45 수정 2021-07-14 10:41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만나 5차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놓고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데 합의했지만 국민의힘 내부 반발로 1시간50분 만에 번복했다. 이에 여당에선 이 대표를 향해 약속을 지키라며 공세를 퍼부었다. 국민의힘에선 합의한 내용의 팩트가 다르다고 반박했다.

송 대표는 1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합의는 이 대표가 실용적 접근을 보여준 결단”이라며 “현재 재난지원금 분류 방법에 따르면 부동산 등 재산이 많은 사람은 받을 수 있지만 무주택 맞벌이는 재난지원금을 못 받을 수 있다. 나와 이 대표의 합의는 이러한 역차별, ‘환불균 불환빈’(患不均 不患貧, 가난보다 고르지 못함을 걱정한다)의 문제를 고려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송 대표는 “신용카드 캐시백에 소요될 예산 1조1000억원을 없애고 일부 항목을 조정한다면 재원 마련에도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재난지원금 지급 시기는 방역 상황을 보고 탄력적으로 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송 대표는 “민주당이라고 왜 다른 목소리가 없겠나. 나도 이 대표와 같은 입장”이라며 “대표가 결단했다면 일단 존중하고 이것을 내부적으로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 처리 방식”이라며 이 대표의 난처한 상황을 고려한 발언을 이어갔다.

송 대표는 “이번 합의는 이 대표가 실용적 접근을 보여준 결단”이라고 치켜세우며 “국민께서 여야 대표의 합의에 대해 환영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대표의 결단을 존중하고 기반이 됐으면 한다”며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민생을 살리는 데 함께해주실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앞서 이 대표는 “송 대표와 만나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의했다”고 밝혔었다. 기획재정부가 재정건전성 등을 이유로 ‘소득 하위 80%’를 대상으로 선별 지급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전 국민 지급’에 합의했다는 것은 민주당에 호재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까지 나서서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데 찬성한다면 정부와 청와대는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윤희숙, 조해진 의원 등이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윤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적 당 운영을 약속해놓고, 당의 철학까지 맘대로 뒤집는 제왕이 되려는가”라고 저격했고 조해진 의원도 “사실이라면 황당한 일”이라며 “우리 당의 기존 입장은 반대였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이 대표가 당의 기존 입장과 다른 합의를 해준 경위가 밝혀져야 한다. 대표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면 큰 문제다. 이 대표가 밝혀야 할 사항”이라고 추궁하기도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 대표도 곧바로 해명하며 합의 내용을 번복했다.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대상과 보상범위를 넓히고 충분히 지원하는 데 우선적으로 추경 재원을 활용하고 남는 재원이 있을 시에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까지 포함해 필요 여부를 검토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황보 수석대변인도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양당 대표 회동의 합의 내용은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손실을 입은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대상과 보상범위를 넓히고 두텁게 충분히 지원하는 데 우선적으로 추경재원을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 후 남은 재원이 있을 시에 재난지원금 지급대상 범위를 소득하위 80%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방역상황을 고려해 필요 여부를 검토하자는 취지로 합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진화에 나섰다. 그는 지난 13일 당 원내대책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합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팩트가 아니다”라며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당 입장은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종전 입장과 똑같은 입장을 가지고 우리는 앞으로도 추경안을 심사할 것”이라고 한 김 대표는 “지금 (추경) 재원이 33조원이라고 하는데 그 재원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국채로 추가로 발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는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엔 4단계 거리두기로 인한 손실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한 김 대표는 “수도권의 4단계 거리두기는 거의 통행 금지령 정도 수준의 매우 심각한 손실을 초래한다. 수도권뿐 아니라 비수도권으로의 확대 여지도 남은 상태다. 그 추이에 맞춰 손실을 다 계산해 이번 추경안을 국회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얼마나 남을지 계산해 볼 수 없는 계산 불능의 상태”라면서 “짐작건대 그 액수가 워낙 커 33조원 가지고 또 논의할 상황이 될까 의문”이라고 했다. 이 같은 기존 입장을 고수한 김 대표는 ‘이준석 리스크’로 번지는 상황에 대해선 경계했다. “리스크라고 말하는 거 자체는 그냥 호사가들이 하는 말”이라고 일축한 김 대표는 “각자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건데 다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있어 그거에 대해 설명한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의 계속된 해명에도 민주당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있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대표를 향해 “송 대표를 만나 귤 맛을 뽐내던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 가더니 100분 만에 귤 맛을 잃고 탱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국민 삶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 여야 대표 간의 정치적 합의가 이렇게 가벼워서야 되겠느냐”고 한 윤 대표는 “100분 만에 말 뒤집는 100분 대표, 탱자 대표가 되려는 것이냐”고 비꼬았다.

“우리 당이 전 국민 지급을 검토하는 이유는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에 따르면 1~2인 가구의 주된 구성원인 2030청년과 신혼부부들이 대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라고 한 윤 원내대표는 “2030청년들은 재난 상황에서도 자기가 알아서 살라는 것이 이 대표의 능력주의다”고 했다. 윤 원내대표는 아울러 이 대표에게 “청년세대와 신혼부부를 배신하지 말라”고 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