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브로드웨이 42번가’, 발레 소재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 그리고 한국 영화 ‘스윙키즈’의 공통점은? 바로 영화의 중요한 순간마다 탭댄스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스윙키즈’의 경우 영화의 중심 소재 자체가 탭댄스다.
탭댄스는 신발 밑창에 탭(tap)이라는 금속을 붙인 구두를 신고 추는 춤이다. 탭을 타악기처럼 활용해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19세기 미국에서 신발 밑에 나무를 대고 마룻바닥을 두드리는 영국 클록댄스와 아일랜드 지그댄스 등 유럽 민속춤들과 서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흑인 토속 리듬이 어우러져 만들어졌다. 이후 대중 쇼인 민스트럴과 보드빌 무대에서 자주 선보이다가 20세기 들어와 대유행하게 됐다.
현대 탭댄스는 리듬탭과 시어터탭으로 양분
현대 탭댑스는 리듬 탭댄스(이하 리듬탭)와 시어터 탭댄스(이하 시어터탭)의 두 스타일로 크게 나뉜다. 리듬탭은 복잡한 리듬 패턴과 발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탭댄스다. 그래서 리듬탭 댄서는 음악가, 즉 타악기 뮤지션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20년대 재즈의 영향을 받아 리듬이 더욱 다양해지고 춤의 범위가 넓어졌다. 브로드웨이 탭댄스로도 불리는 시어터탭은 뮤지컬에 어울리는 쇼댄스다. 전체적인 안무와 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리듬은 덜 복잡한 편이다. 탭댄스는 시대가 흐르면서 브레이킹댄스로 대표되는 스트리트 댄스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한국에서 탭댄스는 일제 강점기인 1920~30년대에 소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 유학파 출신의 전만경이 ‘한국 탭댄스의 선구자’로 제자들을 길러냈다. 해방 직후엔 다양한 장르의 무용단체들과 연구소 등이 설립되는데, 1946년 ‘조선 탭댄스 예술무용연구소’가 설립되는 한편 선수권대회를 열거나 연구생을 모집하는 신문기사나 광고가 등장하고 있다. 전만경은 1946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탭댄스에 대한 교본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즈음 세계적인 탭댄서 겸 배우 프레드 애스테어가 출연한 영화 ‘스윙호텔’이 국내 개봉돼 큰 인기를 끌면서 탭댄스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지방 순회 악극단, 극장 쇼, 미8군 무대 등을 통해 탭댄스 공연이 이어졌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1960년대 후반부터 대중음악과 사교춤 등을 퇴폐 문화로 규정하고 탄압하면서 탭댄스 역시 쇠퇴했다. 이후 무대 공연으로서 탭댄스는 거의 사라지고 방송과 동호회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왔으며 1990년대 들어 뮤지컬의 성장과 함께 대중의 관심을 다시 받게 됐다.
탭꾼의 등장은 한국 탭댄스의 전환점
특히 2002년 탭꾼 탭댄스 컴퍼니의 등장은 한국 탭댄스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미국에서 탭댄스를 배우고 돌아온 1세대인 김길태 단장이 이끄는 탭꾼 탭댄스 컴퍼니는 다채로운 탭댄스 공연을 선보이는 한편 수많은 탭댄서들을 길러내며 탭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2019년부터는 마포문화재단과 함께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을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다. 한국 탭의 현재를 보여주는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은 국내 프로 탭댄서들이 총출동하는 잔치이기도 하다. 3년째 예술감독을 맡은 김길태 탭꾼 단장은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을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홍대 부근은 상암 DMC와도 가깝고 밴드들이랑 협업하기 좋기 때문에 탭꾼을 비롯해 많은 탭댄스 컴퍼니들이 몰려 있어요. 마포가 현재 한국 탭댄스의 중심지인 셈이죠. 그래서 6년 전인 2015년 처음 마포문화재단을 찾아간 이후 꾸준히 탭댄스 페스티벌 개최 기획안을 들이밀었습니다. 아무래도 민간에서 단독으로 하기엔 규모를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았으니까요. 다행히 마포문화재단에서 축제에 공감을 해줘서 2019년부터 매년 치르고 있습니다.”
3회째인 올해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은 ‘두드려 리듬을 만들어내는 탭’에 집중한 탭댄스와 ‘춤춘다는 의미의 댄스’에 집중한 탭댄스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기획됐다. 다만 코로나19 탓에 온라인으로 개최된다. 7월 13~14일, 20~21일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공연이 공개된다.
“축제가 생긴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개최 기간이 일정치 않은데요.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 선언 이전인 1월에 개최돼 라이브로 열렸어요. 3회인 올해 축제 방식을 놓고 마포문화재단 측과 상의를 한 끝에 안정적으로 온라인에서 열기로 했는데요. 최근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진 것을 보면서 결과적으로 온라인 개최로 결정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해외에서 완성도 높은 탭댄스 영상이 많아서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데 비해 국내에선 그동안 없었던 것도 이번 축제를 일찌감치 온라인 개최로 결정하고 영상 제작에 들어간 이유이기도 하다. 영상 제작에는 김혜수, 박해진 등 국내 톱스타들의 CF를 다수 제작한 김건식 CF 감독이 연출로 참여해 탭댄스의 백미인 프로 탭댄서들의 현란한 풋 스텝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사실은 김건식 감독이 대학 후배입니다. CF계에서 유명한 감독인데도 콘셉트부터 편집까지 제 요구사항을 잘 반영해 줬어요. 어쩌면 저의 월권일 수 있었는데도 말이죠. 지난 3월부터 김 감독 꾸준히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완성된 영상은 공연 현장에 있는 듯이 생생하면서도 몰입도가 높습니다.”
미국 뉴욕 유학중 탭댄스에 매료
탭댄스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김 단장은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춤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독립 프로덕션 PD로 일하던 그는 1997년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로 영화 유학을 떠났다.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지였던 뉴욕에서 그는 탭댄스를 접하고는 그 매력에 빠졌다. 그의 형이 김길용 와이즈 발레단 단장인 것을 보면 집안에 춤꾼 DNA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릴 때 형이 발레를 할 때 ‘형은 왜 여자들이나 하는 춤을 출까?’라고 생각할 만큼 저는 춤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미국에서 탭댄스에 매료됐습니다. 탭댄스가 미국 공연예술이나 영화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춤이기도 했고요. 대학 도서관에서 영상 등 각종 자료를 열심히 찾아보는 한편 직접 배웠습니다.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전부가 된 거죠.”
5년간 뉴욕에서 탭댄스 뮤지컬 ‘탭 덕스’의 길 스트로밍 등 최고 수준의 댄서에게 배우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2002년 연습실을 차렸다. 정통으로 탭댄스를 공부한 그에게 아마추어부터 프로 춤꾼까지 탭댄스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수순이었다. 지금은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안무가가 된 김보람과 김설진이 과거에 활동했던 것으로 유명한 방송댄스팀 ‘프렌즈’가 그에게 탭댄스를 배우기도 했다. 또 YG 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대표적인 연예기획사 등에서 소속 아이돌이나 연습생에게 탭댄스를 가르칠 때 그를 초청했는데, 지금은 그의 제자들이 뒤를 이어 강사로 나서고 있다. 앞서 영화 ‘스윙키즈’ 안무팀으로 주인공 EXO 도경수의 일부 대역이자 탭댄스 스승도 그의 제자가 맡았다. 현재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태퍼 150여 명 가운데 70% 정도가 그의 제자라는 점에서 그는 자신을 ‘한국 탭댄스 1세대’라고 자부한다.
“물론 한국 탭댄스의 역사는 1920~30년대 일본을 통해 탭댄스가 처음 소개된 데서 출발합니다. 다만 박정희 정권 시절 단절을 겪고 2000년대 이후 완전히 다른 세대로 바뀌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1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귀국 후 국내에 리듬탭을 뿌리내리도록 만들었다. 리듬탭은 잘 짜인 안무대로 추는 시어터탭과 달리 음악에 맞춰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춤을 추며 발로 리듬을 만들어낸다. 춤의 느낌보다는 리듬을 만들어내는 데 더욱 충실하다. 그는 2004년 봄부터 국내 최초로 콘서트 형식의 탭댄스 공연을 시작하는 등 리듬탭을 활성화했다.
“탭댄스가 재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1930년대 스윙 재즈에서 1940년대 비밥 재즈로 넘어가는 시대에 탭댄스가 춤이냐 음악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오게 됐는데요. 이후 음악으로 보는 측에서는 ‘탭댄서’가 아니라 ‘태퍼’로 부르게 됐어요.”
직접 작곡한 곡으로 채운 앨범을 3장이나 내는 등 뮤지션이기도 한 그가 리듬탭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탭댄스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는 “탭댄스는 매우 유연한 춤이다. 발레나 브레이킹 등 다른 장르의 춤에 탭댄스를 섞으면 훨씬 작품이 재밌어진다”고 말했다.
탭댄스 페스티벌 통해 대중화에 적극적
올해 서울 탭댄스 페스티벌은 어떤 악기와도 리듬을 만들어내며 어떤 음악과도 어울어져 춤출 수 있는 탭댄스의 양면적 매력을 보여준다. 13~14일 음악적인 면을 강조한 ‘탭댄스 클럽 스윙46’은 13개 팀이 참가해 리듬탭의 진수를 선보인다. 제목의 ‘스윙46’은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재즈 클럽으로 매주 일요일 탭댄스 클럽이 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탭댄스와 아카펠라 음악의 만남을 시도한 작품으로 김 단장의 음악을 5인조 혼성 아카펠라 그룹이 새롭게 해석했다.
20~21일 탭댄스, 비보잉, 브레이킹 등 각 장르를 대표할만한 6개 댄스팀이 9개 무대를 선보이는 ‘블랙 댄스 버라이어티’는 탭으로부터 진화해 발전했던 춤의 역사를 보여준다. 탭꾼 탭댄스 컴퍼니가 대표 레퍼토리인 ‘탭꾼풍물’ ‘탭꾼아리랑’ 등을 선보이고, 국내 최초로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비보이 팀인 라스트포원이 ‘보티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등 다채로운 무대가 마련됐다. ‘블랙 댄스 버라이어티’는 홍대 인근 당인리발전소 터에 조성된 공원에서 촬영해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