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박민지(23)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지난 4월 개막해 3개월 넘게 펼쳐진 13차례 투어에서 박민지는 6승을 달성했다. 앞으로 19개 대회가 남았는데, 박민지는 웬만한 선수의 한 시즌 승수를 이미 쌓았다. KLPGA 투어에서 한 시즌 최다승은 신지애(33)가 2007년에 달성한 9승이다. 박민지는 앞으로 3승을 더하면 투어 최다승 타이기록에 도달하고, 1승을 더 추가하면 전대미답의 ‘시즌 10승’을 수립한다.
박민지가 올해 누적한 상금은 11억2804만원. 대상 포인트는 403점이다. 주요 경쟁 부문 랭킹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만만치 않은 기세로 추격하는 상금 랭킹 2위 박현경(21)은 지금까지 4억8166만원을 벌어들였다. 박민지는 상금 랭킹에서 가장 근접한 추격자를 2배 이상 압도적 차이로 따돌리고 있다. 선수들이 가장 욕심을 내는 평균 타수에서도 박민지는 69.45타로 1위다. 대회마다 사나흘씩 순회하는 18개 홀을 올해 평균 70타 밑으로 완주한 선수는 박민지와 69.82타의 장하나(29)뿐이다.
지난해까지의 박민지는 조금 달랐다. 2017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뒤 4시즌 간 매년 1승씩만을 거둬왔다. 대회마다 리더보드 상단에 이름을 올렸고 한 시즌상금도 5억원 안팎으로 작지 않았지만 여자골프 세계 최강 한국에서 수많은 강자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프로 5년차에 잠재력이 폭발한 것이다. 박민지는 지난 12일자 여자골프 세계 랭킹에서 14위에 올라 지난주보다 순위를 4계단이나 끌어올렸다. 올해 랭킹이 발표될 때마다 박민지는 자신의 최고 순위를 다시 쓰고 있다.
무엇이 박민지를 바꿔놓은 걸까. 박민지는 KLPGA 투어 신생 대회 에버콜라겐 퀸즈크라운 출전을 위해 경기도 양주 레이크우드 컨트리클럽으로 찾아간 13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의 변화를 이끌어낸 동력을 ‘긍정적인 사고’로 꼽았다.
“지난해까지 4년간 출전한 대회에서 상위권으로 다가가면 두려운 마음이 먼저 찾아왔어요. ‘3위로만 끝내도 좋겠다’는 식으로 말이죠. 간절히 원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우승이잖아요. 안전하게 지키기만 하는 경기로는 우승을 이루기 어렵다는 생각이 문득 찾아왔어요. 올해부터는 사고방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경기하고 있습니다. 우승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코스와 그린을 한 번 더 살펴보고 공략할 방법도 더 고민하게 됐어요. 그렇게 승수도 늘어난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긍정적 사고로 무장한 게 올해의 변화에서 90%를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골프에서 정신력은 스코어의 당락을 좌우한다. 퍼트는 종잇장 간격으로 홀컵 안에 들어가거나 바로 앞에 멈출 수 있다. 그 하나의 타수로 승자가 갈리기도 한다. 골프를 ‘멘탈 스포츠’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박민지는 “이제 그린에 오를 때마다 ‘이길 수 있다’ ‘지지 않겠다’ ‘반드시 버디를 치겠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퍼트의 순간순간마다 집중력을 높여준다”고 말했다.
생각만 바꾼 것은 아니다. 박민지는 지난겨울 휴식기에 훈련량을 대폭 늘려 체력 향상에 집중했다. 주 2회만 했던 근력운동을 5회로 늘려 매일 2시간씩 소화했다. 그렇게 두 달간 근력을 쌓자 샷 감각이 살아났다. 정교한 샷은 실수를 줄였고 버디 찬스를 늘렸다. 결국 체력과 기본기 없이는 우승으로 다가갈 수 없다. 박민지의 긍정적 사고는 우승 기회마다 방점을 찍었을 뿐이다. 박민지는 “자신감을 갖고 드라이버를 세게 휘두르니 비거리가 늘었고, 세컨드샷도 수월해졌다. 체력을 키우면 비거리를 늘려도 정교한 샷이 어려울 줄 알았다. 다행히 샷도 정확하게 뻗어나갔다”며 웃었다.
박민지의 재능도 올해의 상승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박민지의 어머니는 1984 로스앤젤레스올림픽 핸드볼 은메달리스트인 김옥화씨. 박민지의 강한 체력과 승부욕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재능이다. 박민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낸 시간이 많아 운동하거나 정신을 단련하는 방법을 수월하게 체득할 수 있었다”며 “어머니는 프로 선수로서 정신력을 다듬어주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한결같아야 한다’는 조언을 자주 해주신다”고 말했다.
신지애의 한 시즌 최다승 기록도 멀지만은 않다. 박민지는 “2~3승 정도만 달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올해가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골프인생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며 “상금 랭킹이나 대상 같은 타이틀보다 시즌 최다승이라는 대기록에 가깝게 다가가고 싶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민지는 15일 개막하는 에버콜라겐 퀸즈크라운에서 초대 챔피언 타이틀과 더불어 2연승을 노리고 있다. 여기서 우승하면 시즌 7승, 개인 통산 11승을 달성한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