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바이올린 거장인 핀커스 주커만(72)이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음악인을 향해 인종차별적 망언을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13일 온라인 음악전문지 ‘바이올리니스트닷컴’과 재미 한국계 음악인들에 따르면 주커만은 지난달 25일 뉴욕 줄리아드 음악학교 주최로 열린 온라인 마스터클래스 도중 한국과 일본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됐다.
주커만은 당시 “좀 더 노래하듯이 연주해보라”고 주문했다가 아시아계 자매 학생의 연주가 성에 차지 않자 “한국인들이 노래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매가 자신들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하자 주커만은 “그러면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고, 일본계 혼혈이라는 답변에 “일본인도 노래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쏘아붙였다.
주커만은 행사 말미에도 다시 한번 “한국인들은 노래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의 DNA에 없다”라고 언급해 실시간 영상을 지켜보던 청중을 놀라게 했다.
한 재미 음악인은 매체에 주커만의 ‘노래하지 않는다’는 언급은 예술성과 음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줄리아드 측은 애초 모든 수업 녹화본을 홈페이지에 올리려 했으나 ‘한국인 발언’을 의식한 듯 주커만이 나오는 부분을 뺀 나머지 강연만 게시했다.
비판이 일자 주커만은 “문화적으로 둔감한 언급이었다.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하고 싶다”라는 성명을 내고 소속 학교인 MSM 동료들에게도 “잘못된 말을 했고 많은 사람에 상처를 입혔다”는 이메일을 돌렸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나온 주커만의 망언에 아시아계 음악인들은 페이스북 그룹을 개설해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보이콧 주커만’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차별 발언을 공론화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확산 중인 한 영상을 보면 주커만은 “중국인 여러분은 결코 메트로놈(음악 박자를 측정하거나 템포를 나타내는 기구)을 사용하지 않는다. 단지 빠르고 시끄럽게 (연주)할 뿐”이라며 “여러분은 빠르고 시끄러우면 최고인 줄 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아시아계 음악인들은 주커만의 이 같은 발언이 인종적 고정관념의 틀에 가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소속 학교의 대응이 안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임스 갠드리 MSM 학장은 “주커만은 부적절하고 모욕적인 언급을 했다. 이는 잘못된 발언”이라면서도 주커만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더구나 주커만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그가 앞으로는 더 잘할 것”이라고 지지하기까지 했다.
이 같은 갠드리 학장은 지난해 인종주의 논란에 휩싸인 도나 본 오페라 예술감독 때와도 차이가 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당시 본 감독은 온라인 질의응답 중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적 묘사를 담은 프란츠 레하르의 ‘미소의 나라’를 상연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회피했다가 해임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 휘말렸다. 주커만 사례에 비해 덜 직접적일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본 감독은 논란 이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원태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