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균실 재판 가능한가” 김학의·이재용 사건에 불거진 논란

입력 2021-07-13 12:56

법정에서 증인 사전 면담의 적절성을 둘러싼 다툼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면담 주체가 검사라면 피고인 측이, 변호인이 접촉을 했다면 검사가 사전 면담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식이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서는 검사가 변호인의 사전 접촉을 지적했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에서는 검사의 증인 사전 면담이 문제가 됐다.

증인과 사건 당사자 간의 사전 접촉에 엄격해지는 건 증언이 오염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피고인 혹은 검사가 증인을 회유하거나 미리 입을 맞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선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증인 사전 접촉에도 엄격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다만 “무균실 재판을 하라는 것이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지난 8일 이 부회장의 불법승계 의혹 재판에서 검찰과 피고인 측은 증인 사전면담 공방에만 30분을 썼다. 증인이 삼성증권 직원임을 고려했을 때, 변호인이 미리 증인과 만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검사의 문제 제기가 신호탄이 됐다. 변호인은 증인에 대한 변호인의 면담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에서 허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신중하고 민감한 문제라 양측이 의견을 주면 검토하겠다”는 재판부의 정리가 있고 나서야 예정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증인 사전면담 논란은 이 부회장 재판 전에도 있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감찰무마 관련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당시 부장판사 김미리)는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증인 사전접촉이 진술 회유 의심을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에는 대법원이 검사의 증인 사전 면담을 문제 삼아 김 전 차관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대법원장이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증인 등 사건관계인과 접촉이 금지되자 법조계에서 “피고인 권리 제한”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현행법과 판례는 검사나 피고인 측의 증인 사전 면담을 명시적으로 문제 삼고 있진 않다. 헌법재판소는 검사나 피고인의 증인 접촉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2001년 “검사든 피고인이든 공평하게 증인에 접근할 기회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증인의 증언 전에 한쪽만 증인과의 접촉을 독점하게 되면, 상대방은 증인이 어떠한 내용을 증언할 것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앞의 사례처럼 법원에선 증인과의 사전 면담을 갈수록 엄격히 보는 분위기다. 특히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검찰의 증인 사전 접촉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법정이 아닌 수사기관에서 만들어진 내용에 대한 증거능력 인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공판중심주의가 강조되고 절차적 정의에 대한 민감성이 커지는 만큼 (검찰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재경지법의 부장판사는 “특히 김 전 차관 사건의 경우 증언이 바뀐 게 유죄 인정에 큰 영향을 줬기 때문에 검찰의 사전 면담이 더 문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또 다른 고법 부장판사는 “증거 오염 가능성에 대해 법원이 민감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증언대에 설 증인을 미리 부르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논리에 얽매인 것”이라며 “무균실에서의 재판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