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리즈로는 2년 만에 처음 극장에서 개봉한 ‘블랙 위도우’가 개봉 첫 주에 관객 130만여명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어벤저스 원년 히어로 멤버인 블랙 위도우(스칼렛 조핸슨)를 조명한 영화에는 마블 특유의 액션과 유머 그리고 가족애가 녹아있었다. 차세대 블랙 위도우의 등장까지 암시하며 마블 페이즈 4의 첫 작품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기도 했다.
1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블랙 위도우’는 지난 주말 사흘(9∼11일) 동안 98만4000여명(매출액 점유율 80.2%)의 관객을 모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7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은 136만5000여명에 달한다. 지난 10일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종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고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블랙 위도우’는 ‘캡틴 아메라카: 시빌 워’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사이로 돌아간다. 블랙 위도우가 동료 호크아이(제레미 레너)와 ‘떡밥’처럼 영화 내내 회자하던 ‘부다페스트 사건’이 어떤 일인지도 등장한다. 영화에서 벌어질 사건의 중심이 되는 장소도 부다페스트다.
영화를 관통하는 시각은 타노스 때문에 사라진 인류 절반을 구하기 위해 필요했던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블랙 위도우가 과연 누구냐는 것이다. 블랙 위도우의 과거는 그의 가족과 연결된다. 블랙 위도우의 가족은 두 부류가 등장한다. 그는 생물학적 가족에 대한 기억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도 그들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나머지 하나는 자신을 소비에트 연방의 암살자로 키워낸 ‘레드룸’에서 만들어준 가짜 가족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잠입해 3년 동안이나 유사 가족처럼 살았다가 흩어졌다.
블랙 위도우는 유사 가족과 재회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우선 20년 전 헤어진 유사 자매 옐레나(플로렌스 퓨)와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된다. 옐레나는 ‘레드룸’에서 화학적 세뇌를 받고 암살자로 살다가 도망자 옥사나에게 해독제를 맡고 세뇌에서 풀려난다. 옐레나는 ‘레드룸’이 사라졌다고 믿는 블랙 위도우에게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린다. 그러면서 ‘레드룸’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유사 엄마 역할을 했던 멜리나(레이철 와이즈) 아빠 역할을 했던 알렉세이(데이빗 하버)를 다시 만나게 된다.
영화는 블랙 위도우에게 가족의 의미를 묻는 방식으로 가족애에 관한 이야기를 끌어당긴다. 혈연이 아닌 유사 가족에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전개들이 이어진다. 오하이오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3년간의 기억이 모두 ‘가짜’일 수만은 없다. 함께 지냈던 추억으로 만들어지는 가족 서사는 블랙 위도우에게 어벤저스 멤버들을 또 다른 가족으로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동시에 여성주의의 서사를 부각한다. 화학적 세뇌를 받은 옐레나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처음으로 자기가 사고 싶은 옷을 산다. 그리고 ‘레드룸’에 갇혀 세뇌를 받고 암살자로 수많은 고아 여자아이들을 해방하려는 역할을 자임한다. 유사가족의 서사에서도 행복했던 오하이오주를 떠나왔을 때의 결정은 아버지 알렉세이 독단의 결정이었지만, 재결합하고의 가족 결정은 블랙 위도우와 멜리나가 주도한다.
차세대 블랙 위도우가 될 옐레나를 부각하는 것도 훌륭히 해냈다. 블랙 위도우의 정체성을 계승하면서도 옐레나의 개성을 살렸다. 블랙 위도우이 특유의 포즈를 ‘멋 부린다’며 희화화하면서도 그 포즈를 따라 하는 옐레나의 모습은 킬링 포인트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