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는 신하들에게 “칠정(七情) 가운데 무엇이 제어하기 어려운가?”라고 물었고, 한 신하가 “옛사람이 말하길, 노여움이 제어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고 대답했다.
이에 정조는 “그 말이 참으로 맞다. 그러나 칠정 중에 욕심(欲)은 오상(五常)의 믿음(信)과 같아서 없는 곳이 없다.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즐거움(樂), 사랑(愛), 미움(惡)이 나타나 절도에 맞지 못한 것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욕’, 이 한 글자를 참으로 잘 제어하여 한결같이 천리의 공정함을 따르면, 희·노·애·락·애·오가 모두 절도에 맞게 되어 자연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잘못이 없게 된다. 나는 욕심을 제어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라디오에서 안타까운 사연을 듣다가 정조의 이 말이 떠올랐다.
사연은 이랬다.
그는 2남 2녀 중 차남이다. 30여 년 전 아버지가 집을 지은 후 세금 문제가 있어 큰아들 명의로 등기를 했다. 상속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형은 이 집을 자신의 것이라 주장했다.
아버지는 생전에 가족회의를 소집해 이 문제를 정리하려고 했다. 아버지가 “이 집은 내가 엄마랑 평생 일군 집이다, 집 짓고 등기하는 과정에서 잠시 등기를 큰아들에게 올리는 실수가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되었구나. 그래서...”라고 말씀하시는 도중에 큰며느리가 갑자기 엄청난 소리를 지르며 발작 증세를 보였다. 너무 놀란 가족은 119를 불렀고, 큰며느리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소동을 겪으면서 집 이야기는 그렇게 묻혔다.
그 후 아버지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요양원으로 들어가 2018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아버지가 처음 요양원으로 입소하시던 날, 방문에 붙은 달력을 찢어 자필로 유언을 남겼고, 그의 아내를 불러 큰아들에게 전화 연결을 부탁했다. 그 순간 유언임을 직감한 그의 아내는 녹음기를 눌렀다. 어머니에게 작은 아파트를 구입해주라는 내용이었다.
그날 이후 형 내외는 부모님 찾아뵙기를 점점 소홀히 하고 이제는 남보다 못한 자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노후된 주택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는 이제 연로해 계단이 많은 주택에서 지내기 힘든 상황이다.
그와 누나, 여동생은 어머니가 편한 아파트로 옮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형은 집에 대해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주변에 널린 흔한 사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욕심을 제어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법률적으로는 유언의 효력이 가장 문제이겠으나, 그 후로도 명의신탁과 상속 문제까지 겹쳐 있어서 어머니께 편한 아파트를 마련해 드리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제아무리 훌륭한 종교의 가르침도 인간의 욕심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것 같다. 오죽하면 정조가 칠정 가운데 욕심이 가장 제어하기 어렵다고 했겠는가. 욕심을 경계하는 말 중에 과욕초화(過慾招禍)가 있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는 뜻이다. 이 말에 따르면, 실상 욕심은 경계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경계하고 제어해야 하는 건 ‘과한’ 욕심인 셈이다.
부모, 형제를 버리고 ‘과한’ 욕심을 택한 그의 형은 결국 ‘화’를 부를까? 아니면, 물질적 욕망을 채워 오히려 편안한 삶을 영위할까?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