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알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신과 귀신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 신들이 인간이 예측할 수 없게 움직인다면, 그리고 가족의 삶을 망가뜨린다면, 이보다 더 공포스러운 일이 있을까.
‘곡성’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나홍진 감독이 제 태국 공포영화의 거장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에게 연출을 맡겨 ‘랑종’으로 돌아왔다. 나홍진 감독이 극본과 제작을 맡은 이 영화는 8일 개막한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일반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11일에는 반종 감독이 GV(관객과의 대화)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랑종’에선 ‘곡성’에서 느꼈던 나홍진표 공포 영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우선 주변에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소재를 영화로 끌어들인다. 태국 무속신앙은 한국의 무당과 어딘가 닮아있다. 무당 가족은 대대로 신내림을 되물림 받는다. 주인공 무당 님(싸와니 움툼마)는 어느 날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에게 신내림과 비슷한 증상을 발견한다. 하지만 밍을 살리기 위한 가족들의 잘못된 접신으로 악귀가 모여들고 님은 조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신과 귀신을 향한 시선도 나홍진 감독이 곡성에서 선보인 공포와 닮아있다. 눈에 보이는 악귀가 세상에 존재하는데도 신의 존재는 불명확하다. 님이 섬기는 바얀 신도 언니 노이(싸라니 얀키띠칸)가 믿는 가톨릭도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응답하지 않는다. 밍이 어떤 존재에게 빙의된 것은 눈에 보이는 선명한 공포지만, 이를 해결해야 하는 무당은 종종 길을 헤맨다. 엔딩에는 ‘곡성’에서 보였던 특유의 의뭉스러움을 재현한다. 선악의 경계는 무너지고 희망은 사라진다. 믿었던 것들을 믿을 수 없게 될 때 공포는 극대화된다. ‘랑종’에서는 마치 공포 영화에서는 다룰 수 없는 ‘성역’은 없는 것처럼 사회의 금기들을 찔러댄다.
반종 감독의 특유의 연출은 관객들이 영화에 서서히 스며들게 만든다. 공포영화의 클리셰인 ‘페이크 다큐’ 형식을 차용했다. 처음에는 태국 무속신앙의 세계를 소개해주는 듯 차분하고 친절하게 아름다운 태국의 자연경관과 님의 인터뷰로 영화가 시작된다. 신과 무당의 이야기는 다소 지루하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의뭉스러운 사건이 반복될수록 객석에는 스산함이 남는다. 영화 속 다큐팀이 집안에 설치한 CCTV는 ‘파라노말 액티비티’에서 받은 충격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다큐멘터리 팀이 사건 속으로 점차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영화의 현실감이 관객을 압도한다.
반종 감독은 ‘랑종’을 위해 태국의 각양각색의 무당을 30여명을 만났다. 그는 “귀신은 태어나 한 번 본 적도 없고 무서워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영화에서 말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현상도 접했다”고 했다. 가령 한 무당은 ‘이번에 외국인과 일하게 됐지’라고 먼저 물어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반종 감독은 이날 GV에서는 “제 영화가 해외에서 먼저 개봉하는 건 처음이다. 한국에서 먼저 상영하는 건 큰 영광”이라며 “공포 영화 제작에 따분함을 느꼈다가 제 아이돌인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보고 다시 한번 도전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부천=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