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달라진 것도 많고 알게 되는 것도 많다. 생소한 단어(혹은 용어)들도 코로나만큼 변종, 변이가 심하다. 그 중 하나가 ‘돌파 감염’. 이 말은 “1, 2차 접종을 모두 마쳤어도 코로나에 걸리는 경우”에서 나왔다. 델타 변이가 4차 대유행의 주인공이 된 시점에 또다시 페루 발 람다 바이러스가 남미와 캐나다에서 확산되고 있다. 람다는 델타보다 더 세게 백신 항체를 무력화한다니 그럼 뭘 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돌파 감염은 코로나 상황만은 아닌 것 같다. 전방위적이다. 정치에서도 검증이란 백신 접종을 마친 그럴듯한 인물이라 하던 이들도 줄줄이 돌파 감염을 보이고 있고, 경제에서도 조금 살아난다 싶더니 저녁 6시 이후에는 사실상 통금인 돌파 감염이다. 일상 생활의 곳곳이 돌파 감염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세대간의 갈등, 공정성 시비, 빈부 격차도 무서운 돌파 감염.
돌파 감염은 ‘희망 고문’의 고문 취조관이다. “더 나빠질 것이고, 더 별난 놈이 계속 닥칠 것이니 더 이상 ‘좋아질거야’란 희망을” 버리란다. 돌파 감염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는 암환자나 그 가족들은 너무 잘 안다. “10년 지났는데….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지“ 했는데 전혀 다른 곳에 암이 발견, 전이되면서 돌파 감염으로 결국 죽음을 맞는다.
조금 일찍 죽으나 조금 늦게 죽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돌파 감염으로 죽는다. ‘지병, 노환’ 등 좋은 모양으로 말하지만 결국 어떤 모양으로든 돌파 감염에 의해 죽는다. 특히 코로나의 돌파 감염은 백신이란 사실상의 유일한 희망을 포기하라는 끈질긴 공격이다.
돌파 감염 상황을 성경도 보여준다. 최근 아이티 대통령이 관저에서 무장 괴한들에 의해 살해됐다. 대통령궁은 어느 나라이든 가장 단단히 지키는 곳. 그런데 더 강한 자들이 몰려온 것.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눈다.”(눅 11:22) 더러운 귀신도 깨끗하게 청소된 집을 보더니 “가서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눅 11:24~26) 집안(교회?)을 잘 청소하고 정돈했다고 했는데…. 돌파 감염의 현장을 보여준다.
K방역(청소)을 그동안 잘 해왔다고 했는데 돌파 감염으로 뚫린 것. 나중 형편(지금 형편을 보라)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됐다. ‘형편이 좋아지겠지’ 하는 것은 모두의 희망. 그러나 그 형편이 뜻밖에도 돌파 감염으로 무너지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름 신앙생활(특히 예배)을 잘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파 감염으로 또다시 문이 닫히고 있다. 나름 경건한 모습·모양에서 ‘청소’를 그런대로 해왔다고 했는데…. 돌파 감염은 상당량의 위선, 위장을 벗겨낸다. 그럴듯한 가짜를 드러낸다. 전보다 더 심하게 된 경우가 너무 많다. 평소 깨끗하다고, 거룩한 척도 했지만 돌파 감염에 의해 허상이 드러난다. 어둠이나 악에 의해서 빛과 선이 구별되는 것처럼 돌파 감염도 바로나 아합 같은 악당처럼 나름 임무가 있는 같다.
그럼 답은 없는가. “나와 함께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눅 11:23) ‘교회 생활’이란 백신을 1차, 2차 백신처럼 여러 번 맞았어도 돌파 감염을 뚫고 이겨낸 믿음이어야 한다. “교회 생활 좀 했다”고 어설픈 위로나 셀프 칭찬은 항체로서 무력하다. 온갖 죄악의 돌파 감염 이후의 진정한 승리를 추구해야 한다. 백신은 정답에 가깝지만 승리는 아니다. 인류의 돌파 감염을 십자가에서 홀로 이겨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들지만 돌파 신앙으로 따라가는 것뿐이다. 돌파 감염의 상황이 최악만은 아니다. 최악처럼 보이나 여기서 최후 승리이신 그리스도를 다시 발견하는 ‘돌파 신앙’을 가진다면 더 무엇을 바라랴….
최상준(한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