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통령 암살 배후 여전히 미궁…美에 병력 지원 요청

입력 2021-07-10 08:38
뉴시스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용의자들이 잇따라 체포되면서 이들의 신원이나 행적이 드러나고 있다. 다만 이들이 어떻게 암살에 가담하게 됐는지 범행을 사주한 것은 누구인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이번 암살 사건으로 혼돈에 빠진 아이티는 미국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모이즈 대통령 피살 이틀이 지난 현지시각으로 지난 9일 기준으로 아이티 경찰에 체포된 용의자는 모두 17명이다. 경찰은 콜롬비아인 15명과 아이티계 미국인 2명을 체포해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교전 중 사망한 콜롬비아인 3명과 도주 중인 콜롬비아인 8명을 포함해 총 28명이 암살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체포 용의자 중 11명은 아이티 주재 대만대사관에 침입했다가 체포됐으며 2명은 시민들에게 발각돼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어떻게 이들을 용의자로 특정했는지는 확인되지 ㅇ낳았다. 이중 미국인 2명은 제임스 솔라주(35)와 조제프 뱅상(55)으로 둘 다 아이티에서 태어나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 마이애미헤럴드 등에 따르면 솔라주는 건물 유지보수업체와 소규모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범죄 기록은 없다.

그는 비즈니스 전문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에 자신을 ‘외교 에이전트’라고 소개했으며, 20대 때 보안회사를 통해 아이티 주재 캐나다대사관의 경호인력으로도 잠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SNS 등에 공개된 암살 당일 사저 밖 영상에서 “미 마약단속국(DEA) 작전 중”이라고 외친 인물이 바로 솔라주라고 사건 담당 클레멩 노엘 판사는 이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전했다.

노엘 판사는 솔라주가 인터넷에서 통역 업무 구인 공고를 보고 합류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솔라주는 사건 전 1개월 동안, 뱅상은 6개월간 아이티에 머물렀다고 전했다. 콜롬비아 국적 용의자들 중엔 전직 군인들이 포함돼 있다. 콜롬비아 경찰은 체포된 용의자 15명과 숨진 용의자 2명이 2018∼2020년 사이 전역한 콜롬비아 군 출신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현지 일간 엘티엠포는 확인된 자국민 용의자들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들 중 일부는 지난달 초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로 곧바로 가고, 일부는 아이티 옆 도미니카공화국 푼타카나로 가서 육로로 아이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엘티엠포는 4개의 보안회사가 이들을 모집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콜롬비아와 미국 정부는 자국민의 연루 가능성이 있는 아이티 대통령 암살 사건의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 백악관의 젠 사키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이티 정부의 요청에 따라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 관계자들을 포르토프랭스에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황을 분석하고 최선의 지원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사키 대변인은 설명했다.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도 이날 클로드 조제프 아이티 총리와 통화해 최대한의 협조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경찰과 정보기관도 이날 아이티로 파견될 예정이다. 용의자들의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면 누가 이들을 아이티로 데려와 암살을 지시했는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노엘 판사는 미 국적 용의자 뱅상이 스페인어와 영어를 쓰는 ‘마이크’라는 이름의 외국인 남성이 계획을 주도했다고 말했다고 NYT에 전했다. 노엘 판사는 현지 일간 르누벨리스트에는 용의자들의 진술을 인용해 당초 그들의 임무는 대통령 암살이 아닌 체포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으로 혼돈에 빠진 아이티가 미국에 병력 지원을 요청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항만, 공항, 유류저장고와 기타 핵심 인프라 시설에 대한 추가 테러가 염려된다는 것이 병력 파견을 요청한 이유라고 아이티 정부 측은 밝혔다.

마티아스 피에르 아이티 선거장관은 경찰이 암살 용의자들을 쫓는 데 주력하는 사이 “도시 테러리스트”들이 핵심 인프라를 공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피에르 장관은 “용병들에게 돈을 대준 그 단체는 이 나라에 혼란을 일으키고 싶어한다”며 “유류저장고와 공항을 공격하는 것이 그들의 계획 중 일부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미 정치적 혼란과 범죄단체들의 폭력,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보건 위기에 시달리던 아이티에서는 대통령 암살 후 혼돈이 심화하는 분위기라고 NYT는 진단했다. 현지 유력 일간 르누벨리스트의 로벤손 제프라르 기자는 “슈퍼마켓과 시장에서 사람들이 쌀과 파스타 면을 비롯한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있다”며 요리에 사용하는 프로판가스를 파는 주유소에 긴 줄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아이티의 병력 지원 요청에 미국은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잘리나 포터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아이티의 요청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다만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아이티를 도울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의 고위 관리들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새벽 사저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진 모이즈 대통령은 2017년 2월 취임 후 야권과 첨예하게 대립해와 정적이 많았던 인물이다. 정권의 부패 스캔들과 경제난, 치안 악화 등에 분노한 시위대가 2018년부터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