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주사 앞두고…말라뮤트 찾아온 기적 [개st하우스]

입력 2021-07-10 09:03 수정 2021-07-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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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견사에서 벌써 2년 2개월. 미안하구나" 2년 전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 구조된 말라뮤트, 보담이를 구조자가 안아주는 모습

서울시의 유기동물보호소를 점검하는 날, 대형견사를 지나다 62㎏이나 되는 초대형 말라뮤트를 발견했어요. 철창 안에서 웅크린 모습이 딱해 ‘말라뮤트야’ 부르니까 힐끗, 쳐다보는데 그 눈빛이 모든 걸 체념한 듯했습니다. 시설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덩치가 커서 그런지 입양신청이 단 한건도 없다’고 하더군요.”

동물보호소에는 남은 견생을 비좁은 견사에서 쓸쓸하게 보내는 유기견이 많습니다. 부족함 없는 사회성에 몸도 건강하지만 적합한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아 수 년째 감옥살이를 하는 것이죠. 안락사 위기에서 구조된 이후로 3평 견사에서 머물기를 벌써 2년째인 말라뮤트, 보담이처럼 말입니다.

보담이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 150㎝에 체중 55㎏에 달하는 초대형견이에요. 산책길에 개껌 든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 앞에 넙죽 앉아 악수를 청할 만큼 영리한 이 견공은 어쩌다 2년째 죄 없이 철창살이를 하게 된 걸까요. 보담이를 직접 구조한 동물구조단체 팅커벨프로젝트의 황동열 대표는 “구조한 유기견에게 너무 오랫동안 가족을 찾아주지 못할 때의 미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며 보담이의 숨은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2년 전 그날 마주친, 삶을 포기한 눈빛

황 대표가 보담이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19년 5월. 전국 동물구조단체들이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동구협)의 견사를 방문점검하는 날이었죠. 견사에는 서울에서 구조된 유기동물 1800마리가 수용돼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발생하는 유기동물 숫자는 지난 3년간 최소 6000마리에 달하며, 대부분은 경기도 양주의 동구협 보호소(사진)로 이송된다. 동물단체 팅커벨프로젝트 제공

2년 전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머물 당시의 말라뮤트 보담이 모습.

동물단체 직원들이 소형 견사 점검을 마치고 체중 20㎏ 이상 대형견 시설을 지나던 그때 황 대표는 유난히 커다랗고 슬픈 눈망울과 마주쳤습니다. 족히 60㎏은 돼 보이는 거대한 말라뮤트가 삶의 희망을 포기한 듯 사람들을 등지고 웅크리고 있었어요. 황 대표는 “‘말라뮤트야’ 하고 불렀더니 어깨 너머로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등을 돌리더라”고 전했습니다. 마치 다음날이면 10일의 공고기간이 끝나 심정지 주사를 맞을 처지임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말입니다.

말라뮤트는 생후 2개월 이후 몸무게가 급격하게 불어납니다. 가정에 분양되는 생후 2개월 시기에는 체중 3㎏에 불과하지만 1년만 지나도 30㎏ 넘게 자랍니다. 한달 식비로 10만원은 감수해야 하죠. 황 대표는 “보호소의 대형견들은 어릴 때엔 귀여움을 받다가 성견이 된 뒤 길바닥에 버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합니다.

말라뮤트는 생후 2개월 체중이 3kg에 불과하지만 1년 안에 30kg 넘게 성장한다. 대형 유기견들은 이처럼 성장 이후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k9web

황 대표는 즉시 온라인 메신저로 동료들과 긴급 회의를 소집했고, 3평 규모의 전용 견사를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보담이를 구조하기로 결정합니다. 다음날 심정지 주사를 맞고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을 말라뮤트는 이렇게 한번 더 기회를 얻게 됐죠.

보담이는 그날 안락사를 앞둔 20여 마리의 유기견 가운데 한 마리였습니다. 매년 10만 마리 넘게 버려지는 현실 속에서 고작 한 마리를 구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질문이 동물구조단체들에 제기되곤 하죠.

"구해줘서 고마워요" 구조해준 황 대표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말라뮤트 보담이

황 대표는 “모든 유기견을 다 구할 수는 없지만 저희가 구조한 한 마리의 생애만큼은 완전히 바뀐다”면서 “밑빠진독에 물붓기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안락사를 앞둔 유기견의 심경을 잠시만이라도 헤아려달라”고 호소합니다. 동물단체 팅커벨프로젝트가 지난 2013년 설립된 이래 구조해 입양보낸 유기견 숫자는 2000마리에 달합니다.

견사 나오자 덩실덩실, 보담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지난 5일, 국민일보는 경기도 양주의 임시보호소에서 보담이를 만났습니다. 영하 50도 알래스카의 혹한도 견디는 이중모를 더운 여름을 대비해서 시원하게 밀어낸 모습이었어요. 말라뮤트 특유의 풍성한 털을 깎고나니 체감상 덩치가 절반은 줄어든 것 같습니다.

털 깎기 전에 풍성했던 보담이의 모습.

"이번 여름, 푸들 스타일이 유행이래요" 더운 여름에 대비해 시원하게 털을 깎은 보담이 모습. 리트리버만큼 영리한 말라뮤트 견종답게 처음 만난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교감한다.

원래 62㎏이 넘던 몸무게를 바짝 감량해서 표준체중인 55㎏대로 맞췄어요. 구조 당시 뱃살이 두꺼워서 중성화수술도 불가능할 정도였거든요. 마침 전직 헬스 트레이너였던 황대표가 직접 보담이의 식단 관리와 유산소 운동을 챙겨준 덕분에 체중감량이 가능했죠.

하지만 전국의 유기동물을 구조하느라 바쁜 황 대표가 보담이를 만날 수 있는 건 일요일 단 하루 뿐이에요. 보호소 직원들도 20마리 넘는 개들을 돌보느라 충분한 산책을 시켜줄 수 없는 형편. 보담이는 3평 좁은 견사에서 지내며 그저 황 대표가 찾아오는 그날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보고 싶었어요, 아저씨" 그리운 구조자 품으로 달려가는 보담이 모습

견사 문이 열리고 보담이는 그리운 황 대표의 품으로 달려갑니다. 50㎏ 넘는 초대형견이 얌전하게 산책하는 모습이 신기한지 가는 곳마다 시선이 집중됐죠. 취재기자가 커다란 개껌을 꺼내들자 넙죽 앉아서 악수와 하이파이브를 건네는 애교를 부리기도 했답니다. 어느덧 촬영을 마치고 보담이는 다시 견사로 들어갈 시간. 황 대표는 미안한 마음에 “2년하고도 2개월 동안 여기서 지내게 해서 미안하다”며 보담이를 안아주었어요.


사랑 받을 준비를 마친 순둥이 말라뮤트, 보담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이메일로 입양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젠 사랑받고 싶은 말라뮤트, 보담이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 말라뮤트 / 6살추청 / 암컷(중성화O) / 약 55㎏
- 사람을 잘 따르고 애교 많은 성격
- 간식과 산책을 좋아함. 장난감은 즐기지 않음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tinkerbell0102@hanmail.net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이성훈 기자, 김채연 인턴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