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대학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50대 청소노동자의 남편이 ‘직장 내 갑질’을 주장하며 “사람으로 봐 달라”고 호소했다.
남편 A씨는 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주기적으로 필기시험을 봤다는 의혹에 대해 “사람을 인격으로 보면서 관리를 한다면 등급을 매길 수 없을 것”이라며 “기계로 바라본다면 그들이 상처받는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일을 통해 그 사람을 장악하기 위한 것 아니었나’하는 생각까지 든다”면서 “‘너희들은 우리 말에 따라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A씨의 부인 이모씨는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가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귀가하지 않자 가족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숨진 이씨에게 극단적 선택이나 타살 혐의점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족과 노조는 이씨가 생전 과중한 업무와 서울대 측의 갑질에 시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100ℓ짜리 봉투를 매일 6~7개씩 옮겨야 했으며, 건물명을 영어나 한자로 쓰는 등 필기시험까지 봤다는 것이다. 시험 결과를 공개적으로 발표해 점수가 낮은 청소노동자가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A씨는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시험을 봤고 결과가 동료 앞에서 다 공개가 됐다”며 “그걸로 인해서 동료들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보고 많이 어렵다고 얘기를 자주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1일 새로운 관리자가 들어온 다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아무 예고 없이 시험을 봤다고 들었다”고 했다.
또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글을 모르는 분도 있었던 것 같다”며 “그런 분이 들었을 자괴감을 생각할 때 동료들도 같이 마음 아파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A씨는 “학교 측이 언론을 통해 ‘점수는 공개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다 공개했다고 한다”면서 “학교 측은 자긍심을 심어주고 우수 사원을 칭찬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그런 분위기 가운데 우수 사원을 격려했다는 것이 저는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A씨는 청소노동자들이 시험을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며 “일하기 편한 건물이 있고, 어떤 곳은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못 보여서 어려운 곳으로 배치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새로 온 관리자가 볼펜을 안 가져왔다는 이유로 감점을 하고, 복장까지 점검하는 등 과도한 지시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의 시간에 일반 행정직 직원처럼 회의하는 분위기를 살리고자 그런 일을 했다고 하는데 깔끔한 정장과 구두, 여자 직원에게는 가급적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고 지시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A씨는 이처럼 갑질 의혹을 받는 관리자 등 학교 관계자가 장례식장에도 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학교 행정실에서 몇분의 선생님이 와서 계속 일을 해주셔서 굉장히 감사했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오셨던 분들이 그분들이더라”라며 “만약 그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오지 말아 달라고 얘기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이씨의 사망과 관련해 직장 내 갑질로 인한 인권 침해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인권센터에 의뢰했다. 갑질 가해자로 지목된 안전관리팀장은 다른 업무로 전환될 방침이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