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 모 중사가 가해자인 장 모 중사, 회유·은폐를 시도한 상관 등에게 여러 차례 2차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대 전속과정에서도 성추행 피해 사실이 노출되는 등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방부 검찰단은 9일 이 중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1일 국방부가 공군으로부터 사건을 이관받아 대대적 수사에 착수한 이후 38일 만이다. 이날 공개된 수사결과에는 이 중사가 겪었던 성추행과 상관들의 사건 무마 시도 정황이 담겼다. 최광혁 국방부 검찰단장은 “향후 남은 추가 의혹 부분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신고해봐” “너도 다쳐”…끈질긴 ‘2차 가해’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이었던 이 중사는 지난 3월 2일 원치 않은 회식에 참석한 뒤 관사로 복귀하는 차 안에서 선임 부사관 장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당시 차량 탑승 인원은 5명이었다. 문모 하사는 운전석, 민간인은 조수석, 이 중사·장 중사·노모 상사는 뒷자리에 차례로 앉았다. 이후 노 상사와 민간인이 먼저 하차한 뒤 장 중사가 성추행을 시도했다.
장 중사는 술에 취한 이 중사를 챙겨주려는 것처럼 “정신 차려 이 중사”라고 말하며 20분간 성추행을 했다. 차에서 내린 이 중사를 쫓아가 “너 신고할 거지. 신고해봐”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또 사건 다음 날인 3월 3일 문자를 보내 “하루 종일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라고 협박했다.
이 중사는 같은 날 소속반 상관 노모 준위와 노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정식 보고했다. 그러나 이들은 코로나19 방역지침 위반으로 징계받는 것 등을 우려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노 준위는 “다른 사람에 대한 처벌도 불가피하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 피해가 간다. 너도 다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상사도 “없던 일로 해줄 수 없겠냐”고 요청했다.
노 준위는 이 중사의 신고 의사가 확고하고 은폐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이날 오후 10시쯤 20비행단 정보통신대대장에게 해당 사실을 보고했다. 보고 이후에도 노 상사는 이 중사의 남편(당시 남자친구)에게 사건 합의와 선처를 종용하며 위력을 행사했다.
전방위적 2차 가해…인사조치도 늑장
검찰단은 20비행단과 공군본부가 신고를 받고도 피해자·가해자 분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20비행단은 사건 엿새 만인 3월 8일 성고충 전문상담관이 장 중사와 이 중사의 지역적 분리가 필요하다고 말한 뒤에야 공군본부 측에 장 중사 파견을 건의했다. 그러나 공군본부의 늑장 처리로 장 중사는 사건 17일 만에야 다른 부대로 파견됐다.
이 중사는 피해자 조사, 치료 등을 위해 3월 4일부터 5월 2일까지 청원휴가 기간 대부분을 20비행단 관사에서 머물렀다. 장 중사가 파견되기 전까지 17일 동안 장 중사의 숙소와 960m 떨어진 곳에서 지낸 것이다. 2차 가해자인 노 준위 숙소와는 불과 30여m 거리였다.
이 중사는 청원휴가가 끝난 뒤 2주간의 자가격리를 거쳐 5월 18일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검찰단은 이 과정에서 공문에 첨부됐던 인사위원회 결과, 전출승인서 등에 성추행 피해 사실이 노출됐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 중사가 전속 신고를 하기 전부터 15비행단에서는 ‘성추행 피해자’라는 사실이 간부들 사이 공공연하게 퍼졌다고 한다. 검찰단은 부대 상당수가 피해자의 전속 경위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15비행단 정보통신대대장(중령)은 이 중사 전속 전인 5월 14일 대대 주간회의에서 중대장(대위)과 준·부사관들이 듣는 가운데 “새로 오는 피해자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전입을 오니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마라”라고 지시했다. 중대장도 준·부사관을 모아놓고 “이번에 전입해 오는 피해자에게 성 관련된 일로 추측되는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당수 인원이 ‘성추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한 상황에서 이 중사는 부대를 옮긴 직후 이틀간 부대장을 포함해 17곳을 들러 ‘전입 신고’를 했다. 다만 검찰단은 15비행단측이 이 중사에게 불필요한 전입 신고를 하도록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지시를 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중사는 전속 후 사흘 만인 5월 2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국방부는 증거인멸 등 혐의로 20비행단 정통대대장을 재판에 넘긴 데 이어 이 중사의 신상을 유포한 15비행단 대대장과 중대장도 명예훼손 혐의로 전날 기소했다. 이들에 대한 징계 절차도 진행할 방침이다. 늑장 인사처리를 한 공군본부 인사 담당 부서와 20비행단 인사행정처, 군사경찰대대 등에 대해서도 ‘기관경고’ 조치할 방침이다. 아울러 성폭력 피해자가 부대 전속을 희망할 시 관련 절차를 간소화하는 한편 신분 노출 방지 방안 등에 대해 국방부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