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4구역 철거건물 붕괴사고가 9일 사고 발생 한 달째를 맞았다. 경찰은 사고원인과 책임자 규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많은 시민은 아직 사고 후유증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붕괴사고 직후 수사본부를 구성한 광주 경찰은 “지난 7일 석면철거 감리자 등 그동안 총 22명을 형사 입건해 불법 다단계 하청에 연루된 한솔·백솔 건설 관계자와 감리자 등 3명을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경찰은 사망 9명과 중상 8명 등의 인명피해를 불러온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와 인허가 과정 등 재개발 비리 전반에 대한 조사 등 두 가지 방향으로 수사를 펴고 있다.
애초 사고 발생 한 달에 맞춰 사고원인 1차 수사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던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가 미뤄졌다는 이유로 이를 연기했다. 국과수는 이달 초 1차로 사고원인 분석결과를 내놓겠다는 방침을 번복했다. 이달 20일 이후 최종 사고원인 분석 결과를 한꺼번에 발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국과수의 분석을 토대로 관련자들의 책임을 입증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경찰은 자체적 수사를 통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는 등 수사력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은 건물 붕괴에 영향을 끼친 직접적 원인으로 수직·수평 하중을 고려하지 않은 흙더미 활용 하향식 압쇄공법, 해체계획서를 무시한 작업절차, 건물지지용 쇠줄 미설치, 과도한 물뿌리가 등을 꼽았지만 철거 비리 몸통인 조폭 출신의 인사 문 모(61) 씨가 미국으로 도피하도록 수수방관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경찰은 향후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의 책임 규명과 함께 철거공사 이면계약, 조직폭력배 연루설, 정관계 로비설 등을 중심으로 수사망을 좁혀간다는 계획이다. 재개발 비리 전반에 관한 수사영역이 워낙 광범위해 수사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철거업체 선정 비리와 불법 하도급, 석면철거 단가 부풀리기, 공무원과 지역 정치권 유착관계, 지분 쪼개기·보류지 등의 그동안 불거진 다양한 의혹도 촘촘히 들여다볼 예정이다.
지난 12일 희생자 9명을 추모하기 위해 광주 동구청 주차장에 설치된 합동 분향소에는 한 달째 시민들의 이어지고 있다. 오는 11일 문을 닫는 분향소에는 8일까지 6000여 명의 시민들이 찾아 헌화 분향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사고현장을 방문해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잇달아 개최했다.
광주시와 동구는 유사 사고를 막기 위해 다양한 대책수립에 분주하다. 시는 학동4구역 사고가 비상주 감리자 직무유기와 안전감독 부실로 발생했다는 판단에 따라 현장 상주감리를 의무화하도록 건축물 해체공사 업무지침을 뜯어고쳤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난을 비껴가기 어렵다. 동구는 비리의 온상으로 꼽히는 재개발조합의 총회 결의방식, 용역업체 계약방식 등에 대한 개선안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붕괴 참사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펼친 소방관과 시민들은 크고 작은 후유증을 겪고 있다. 시 소방안전본부는 지난달 구조 활동·현장지원에 투입된 소방관 110명을 대상으로 긴급 심리지원 활동을 추진해 지금까지 44명이 심리진단을 받았다. 심리상담과 진단은 이달 말까지 진행된다.
동구 정신건강 복지센터가 지난달 25일까지 붕괴 현장 인근 상가 등을 방문해 상담에 나선 결과 상당수 상인이 “건물 밑을 지날 때마다 무너질 것 같다는 불안감을 자주 느낀다”고 호소했다. 복지센터는 그동안 붕괴사고 유가족과 생존자 62명을 포함한 598명의 심리상담을 벌였다고 밝혔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