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의 우승은 ‘호피폴라’가 차지했다. 라운드별 다른 멤버 조합의 팀을 거쳐 최종 결성된 호피폴라는 아일(보컬/건반), 하현상(보컬/기타), 홍진호(첼로), 김영소(기타)로 구성된 크로스오버 밴드다. 첼리스트로는 드물게 밴드 활동을 하는 홍진호는 자신의 본령인 정통 클래식계에서도 꾸준히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오는 16일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17일 광주문화예술회관,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7일 충남도청 문예회관에서 예정된 ‘첼로탄츠’는 바로 홍진호의 음악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자리다. 독일어로 춤을 뜻하는 ‘탄츠(Tanz)’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세련되고 강렬한 춤곡을 테마로 구성했다. 브람스의 ‘헝가리안 무곡’, 라벨의 ‘볼레로’ 등 춤곡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비롯해 빌라-로보스의 ‘브라질풍 바흐’ 등 이국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이 포함됐다. 조윤성 트리오, 클래식 기타리스트 김진세, 스트링 콰르텟이 홍진호와 함께 섬세한 하모니를 만들어낼 예정이다.
“호피폴라 활동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 우려하는 분이 많았지만 저는 첼리스트로서 크로스오버 뮤직만이 아니라 본격 클래식 레퍼토리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호피폴라의 홍진호도 멋있지만, 클래식 연주자 홍진호도 계속 보고 싶다’는 팬의 메시지가 제게 용기를 줬어요. 그리고 호피폴라를 통해 첼로 음악에 좀 더 다가서게 됐다는 팬들도 적지 않습니다.”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홍진호는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음색이라는 첼로의 보편화된 이미지를 벗어나, 역동적이고 화려한 첼로의 음색을 보여주고 싶었다. 앞으로도 첼로의 다양한 면모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비전을 밝혔다.
홍진호는 서울예고, 서울대를 거쳐 독일 뷔르츠부르크 국립음대 석사와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그리고 프랑스 그랑프리 비르투오조 국제 콩쿠르 1위, 독일 멘델스존 콩쿠르 1위 등 각종 콩쿠르에서도 수상한 재원이다. 그런 그가 크로스오버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지나 2016년 귀국 독주회의 충격 때문이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귀국 독주회를 열게 됐는데요. 연락했던 사람들 모두 당연한 듯 초대권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젊은 직업 음악인으로서 한국 클래식계 초대권 문화에 쇼크를 받았습니다. 허무하기도 했고요. 무조건 관객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은 현실성 없는 꿈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저를 알리기 위해 슈퍼밴드 출연을 결심했어요. 독일에서 클래식과 재즈, 전자음악이 어우러지는 무대를 보거나 직접 참여하면서 동시대와 호흡하는 매력을 느낀 것도 슈퍼밴드 출연에 용기를 내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해 주변에서 그의 슈퍼밴드 출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오디션의 첫 라운드 방송 이후에는 ‘클래식은 클래식대로 놔둬라’는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 회차를 거듭할수록 밴드 속 첼로의 소리에 매료된 시청자들이 홍진호의 활동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연주자로서 프로의식이 더 생겼다. 예전에 클래식만 할 때는 작곡가의 의도대로 연주하는 것 외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마인드는 프로페셔널 한 것이 아니다”면서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티켓값 이상의 연주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밝혔다.
홍진호는 올해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나섰다. ‘첼로탄츠’ 리사이틀에 앞서 13일 새 앨범 ‘Purify’가 나올 예정이다. 지난해 롯데콘서트홀 공연실황을 담은 ‘Purify’는 리사이틀에서 연주될 브람스, 라벨의 곡을 보너스 트랙으로 추가했다. 그는 이런 콘서트와 음반 작업을 위해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당초 1000만 원을 모금액으로 잡았지만 오픈 당일 200% 이상 달성됐다. 그는 “코로나 장기화로 음악에 대한 절실함이 커졌다. 나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의 절실함 덕분에 크라우드 펀딩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홍진호는 특히 지난 2월부터 온라인 북콘서트 ‘진호의 책방’을 책과 음악 이야기를 풀어내 주목받았다. 5차례 열린 북콘서트에는 소리꾼 이희문, 기타리스트 김영소, 카운터테너 최성훈, 싱어송라이터 이진아·하림 등이 참가해 홍진호와 함께 연주하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할아버지가 도서관장을 하셔서 어릴 때부터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접하며 놀곤 했어요. 제가 호기심이 많은 편이거든요. 하지만 책을 정말 열심히 읽게 된 것은 독일 유학 시절부터입니다. 연습을 마치고 저녁 시간에는 가족이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책들을 읽곤 했죠. 소속사인 크레디아에 책을 좋아해서 북콘서트를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꺼낸 게 ‘진호의 책방’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홍진호가 직접 책을 정하는 것은 물론 게스트까지 직접 섭외했다. 그의 진정성에 힘입어 ‘진호의 책방’은 유료임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구독자 수를 달성했다. 머지않은 시기에 ‘진호의 책방’ 시즌2가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는 “시즌1에 초청한 음악인들과 함께 한 시간은 정말 좋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음악 이외의 분야에서 책을 쓴 전문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면서 “부끄럽지만 나도 언젠가는 직접 책을 쓰고 싶다”고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