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여성가족부다. 선거철이면 돌아오는 ‘여가부 폐지론’은 올 대선도 피해가지 않았다.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등 야권 대선 주자들이 여가부 폐지를 들고 나왔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에 호응했다.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사이다’라며 환호성을 지른다.
유 전 의원과 하 의원 등 ‘여가부 폐지론자’들은 공통적으로 여가부를 폐지한 뒤 독립적인 정부 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주장한다. 유 전 의원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여가부라는 별도의 부처를 만들고 장관, 차관, 국장들을 둘 이유가 없다”며 “대통령 직속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부처들이 양성평등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도록 종합 조율하겠다”고 공언했다. 하 의원도 같은 날 “현재 여가부는 사실상 젠더갈등조장부가 됐다”며 ‘대통령 직속 젠더갈등해소위원회’ 설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도 여성가족부를 없애고 ‘양성평등위원회’를 만들자는 입장이다.
여성정책 전담기구, 여전히 필요하다
한국은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큰 나라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1 세계 성 격차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성평등 순위는 조사 대상 156개국 중 102위로 하위권이다. 성별 임금 격차도 심각하다.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이래 성별 임금격차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정책과 기구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얘기다. 여가부 폐지에 불을 지핀 이들도 이 같은 정책과 기구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쟁점은 현재의 부처보다 폐지론자들이 주장하는 위원회가 여성정책 추진이나 성 불평등 해소에 더 효과적이냐다. 정부 부처는 상대적으로 많은 인력과 예산을 바탕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발굴해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위원회는 구성 방식과 소속에 따라 성격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조정과 중재, 자문 등에 강점이 있다. 다만 위원 임명이 외부에서 이뤄지는 탓에 외풍에 약하고, 예산과 인력을 보장받기 어려워 독자적 정책 집행이 힘들다는 약점이 있다.
조경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8일 “위원회는 자문·조정·협의·심의·의결 기능을 수행하는 합의제 기구”라며 “정책이나 프로그램의 집행기능을 수행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인력과 예산에 있어서도 독임(獨任)형에 비해 감축될 가능성이 높다. 자문위원회가 아닌 행정위원회의 경우 사무국을 둘 수 있으나 외부 파견직이 늘어 고유 부처 소속 인력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면서 “여가부가 기능 중심의 행정부처로 혁신할 필요는 있겠지만, 여가부 대신 위원회 조직으로 젠더갈등을 포함한 현장의 다양한 난제를 효율적으로 풀어나가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다른 부처에 일 나누면 여가부 필요없다?
여가부 폐지론자들은 ‘여가부 업무를 각 부처에 나누면 여가부가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여가부가 새로운 여성정책을 개발하고 진일보한 정책 기조 및 방향성을 전 부처로 확산하는 역할도 맡고 있단 점을 간과한 면이 짙다. 실제로 여가부는 2012년 아이돌봄지원법 제정을 주도해 맞벌이가정의 돌봄부담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 2018년부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운영하며 피해 영상 삭제나 법률상담 등을 제공하고 있다. 여성정책 전담 부서가 아니면 개발하기 어려웠을 정책들이다. 한 여가부 관계자는 “각 부처엔 원래 하던 일이 있어 여가부 업무가 그 부처로 이관된다 하더라도 후순위에 배치될 공산이 크다”며 “저출산·고령화 등 여성 문제의 관점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가 많은데 무조건 여가부를 없애고 보자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 부처 형태인 곳이 많아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나라는 위원회가 아닌 부처 형태의 여성정책 전담기구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김복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국제연합(UN) 자료를 분석해 2020년 발표한 ‘각국 여성정책추진체계 특성과 양성평등 수준 분석’ 보고서를 보면, 여성정책 전담기구를 둔 나라는 2015년 기준 총 191개국이다. 이 중 한국의 여성가족부처럼 독립부처(부/청) 형태로 여성정책 전담기구를 둔 나라는 독일, 프랑스, 스웨덴, 캐나다 등 137개국이고, 부처 내 국·과 형태의 하부조직인 나라는 미국, 영국, 일본 등 23개국이다. 위원회 형태인 나라는 벨기에, 포르투갈 등 20개국에 불과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독립부처 형태로 여성정책 전담기구를 설치한 나라는 2008년 107개국에서 2015년 137개국으로 대폭 상승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여성 및 젠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정부기구형의 국가들이 증가한 것으로 보이며, 정부기구 중에서도 권한이 많은 독립부처 및 하부조직형의 기구로 전환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UN도 1995년에 채택한 ‘세계여성행동강령’에서 “국가위원회, 여성국 및 적절한 인력과 예산을 가진 기타 기관과 같은 정부 내의 여러 분야와 기관을 망라한 기구의 설립은 여성을 위한 평등한 기회의 달성과 국가 생활에 대한 완전한 통합을 가속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환 조치가 될 수 있다”며 적절한 예산과 인력을 보장받는 여성정책 전담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가부 향한 따가운 시선, 권한 확대로 극복해야
물론 현재의 여가부가 따가운 시선을 받는 건 사실이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고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가 많다. 문재인정부에서 발생한 권력형 성범죄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는 권한과 기능의 조정을 통해 여가부를 혁신해서 해결할 문제란 지적이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일을 잘 못한다고 부처를 없애야 하면, 집값 폭등의 책임을 지고 국토교통부도 없애야 하느냐”며 “모든 부처는 국회가 만드는 법률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일을 하는데, 국회가 권한을 주지 않았으니 여가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우리 사회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 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국회가 법률을 제정해 여가부에 권한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