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 문고리 열릴까…광주 학동 붕괴사고 한 달

입력 2021-07-08 16:09 수정 2021-07-08 16:43

‘5억 원짜리 황금 소나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나온 호화 문고리, 생선 뼈 모양의 헤링본 원목 거실…….

광주 학동4구역 철거건물 붕괴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됐으나 숱한 의혹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전담 수사본부를 구성한 경찰은 철거현장에 투입된 굴착기 기사 조 모(43·백솔건설 대표) 씨 등 3명을 구속했지만, 구체적 사고원인과 책임자를 규명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지난달 9일 붕괴사고 이후 한 달 동안 100여 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해 철거업체 선정 비리와 이면계약, 조폭 연루설, 정·관계 분양권 로비설 등을 규명해왔다”고 8일 밝혔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는 형사과, 그 외 인허가 등에 얽힌 의혹은 수사과가 분담해 후진국형 참사가 발생한 구체적 과정을 철저히 따져보도록 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고 발생 한 달이 되는 9일 1차 수사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가 슬며시 뒤로 미뤘다. 그동안 사고조사위원회와 함께 5차례 현장검증을 벌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사고원인 분석이 늦어져 일정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애초 7월 초 1차 분석결과를 수사본부에 전달하려던 국과수는 오는 20일쯤 최종 결과를 한꺼번에 통보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철거와 동시에 진행된 과도한 물뿌리기 작업 등이 건물 붕괴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는지 등에 관한 국과수의 과학적 분석결과가 나와야 관련자들의 책임을 입증하거나 가려낼 수 있다는 태도다.

하지만 경찰은 사고원인 분석과 별개인 재개발사업 철거 계약 관련 비위 수사에도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핵심 피의자인 재개발조합 정비대행업체 전 고문 문 모(61) 씨가 지난달 13일 미국으로 도피한 이후 문 씨에게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형국이다.

문 씨는 모 경찰 간부와 국제전화에서 “수사진을 전원 교체해주면 변호사를 선임하고 귀국할 수 있다”며 경찰 수사가 불공정하다는 엉뚱한 주장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미적거리는 사이에 미국으로 잠적한 문 씨는 철거건물 붕괴사고의 ‘몸통’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경찰은 초기 수사단계에서 ‘신병확보’를 미루다가 눈치 빠른 문 씨에게 제대로 당한 꼴이 됐다. 문 씨는 출국 이후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면서 국내 지인들을 통해 증거인멸에 주력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학동4구역에 앞서 3구역 재개발 사업부터 이권에 개입해온 것으로 파악되는 문씨가 지능적으로 경찰 수사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붕괴 참사 현장인 학동4구역과 앞선 3구역 재개발 조합장은 지역 정치인 출신인 조 모(73) 씨가 연이어 맡았다. 조 씨는 4구역 조합장에서 애초 배척됐다가 조폭 출신으로 알려진 문 씨의 결정적 도움을 받아 다시 조합장 자리에 오른 정황이 포착됐다.

경찰이 인터폴 등과 협조해 문 씨의 신병을 서둘러 확보한 뒤 엄정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이유다.

학동 4구역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현산)에 대한 경찰 수사진척도 어찌 된 일인지 더디다. 경찰은 서울 용산 현산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철거 관련 계약서 등 상당수 자료를 확보했으나 아직 꿀 먹은 벙어리다.

790여 건의 압수품 분석에 적잖은 시일이 필요하다는 해명이지만 ‘복마전’으로 불리는 재개발 사업 전반에 대한 정교한 수사역량이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사이 조합장 조씨가 조합원들의 부정적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증했다가 1년여 만에 말라 죽었다는 학동 제3구역 모 아파트 정문의 ‘5억 원짜리 황금소나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한 1개당 100만 원짜리 호화 문고리, 생산 뼈 모양의 값비싼 헤링본 거실 바닥 등에 얽힌 해괴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경찰은 한 달 동안 현산으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철거공사를 진행한 한솔 관계자와 감리자 등 그동안 22명을 입건해 이 중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재 재개발조합이 용역계약을 체결한 업체 현황과 실제 계약 내용, 철거왕 이 모 씨가 운영하는 다원이앤씨 등의 불법 재하도급에 대해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다.

분양권 로비가 이뤄졌다는 광주지역 정·관계 인물에 대해서도 경찰은 촘촘한 정보력을 총동원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직 기초단체장과 국회의원 보좌관, 총경급 경찰 간부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일명 ‘쪼개기’ 투자과정에서 이들이 서로 유착했거나 검은돈에 매수돼 붕괴 참사가 발생하게 했는지 경찰은 엄중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 수사본부가 곧 발표할 수사결과가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고 있다.

조합원 648명이 참여해 총면적 12만6400㎡에 최고 29층 아파트 19개 동 2282세대를 신축·분양하려던 제4구역 재개발 사업은 예상치 못한 붕괴사고로 조합 임원들이 경찰에 줄줄이 입건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경찰 수사결과에 따른 조합장 등의 기소 여부가 결정되고 재개발 조합 운영과 아파트 신축이 정상화되는 데는 적잖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9일 광주 학동 제4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승강장에 정차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치는 등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17명의 사상자가 난 학동 붕괴 참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잘 알고 있다”며 “엄정하게 수사하고 책임자를 법과 원칙에 따라 구속하는 등 예외 없이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