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던 어머니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치어 숨지게 한 50대 운전자가 법정에서 혐의를 인정했다.
인천지법 형사12부(김상우 부장판사) 심리로 8일 열린 첫 재판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상 혐의로 구속기소 된 A씨(54)는 “(공소 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날 황토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나온 A씨는 재판장의 인정신문에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A씨의 변호인은 “유족의 충격이 너무 커서 직접 접촉은 하지 못했고 피해자 측 변호인과 두 차례 통화했다”며 “합의를 위해 계속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유족이 정신적인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참고 자료로 진단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날 법정에 나온 유족 B씨는 “매일매일이 고통의 연속”이라며 A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자신을 “배우자를 잃은 형의 동생이고 어린 두 조카의 작은 아버지”라고 소개한 B씨는 “(가족들은) 정신불안과 우울증으로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다”면서 미리 써온 의견서를 읽는 내내 울먹였다.
그는 “그날 형수님은 둘째 조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스쿨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며 “(운전자가) 브레이크만 밟았어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5m가량 끌려가다 차량 뒷바퀴에서 발견된 형수님은 둘째 조카를 걱정하며 두 눈을 감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면서 “그런데도 (사고 이유와 관련해) 자신의 눈 시술을 핑계 대는 가해자를 보며 가족들은 용서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B씨는 “첫째 조카는 동네에 사고 소문이 돌면서 유치원을 옮겼고 (엄마와 함께 사고를 당한) 둘째 조카는 수술 후에도 걷지 못하는 데다 심신불안으로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며 “첫째 조카는 엄마를 죽인 사람은 어디 있느냐며 절대 용서하지 말라고 한다. 둘째는 엄마가 언제 오는지 계속 묻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법과 정의가 바로 서 있는 나라여서 판사님이 우리 피해를 모두 인정해줬다’고 말할 수 있게 가해자에게 엄한 처벌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유족 측 변호사는 피해자의 남편이 아닌 B씨가 출석한 이유에 대해 “(남편이) 재판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 대신 동생이 나왔다”고 재판부에 설명했다.
A씨는 올해 5월 11일 오전 9시24분쯤 인천시 서구 마전동의 한 스쿨존에서 레이 승용차를 몰고 좌회전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C씨(32)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당시 C씨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함께 건너던 그의 딸(4)도 다리뼈와 두개골이 부러지는 등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발생 사흘 전 왼쪽 눈 수술을 했고, 차량의 전면 유리 옆 기둥인 ‘A필러’에 가려 C씨 모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