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테니스 황제’ 페더러, 영광의 윔블던서 퇴장

입력 2021-07-08 14:55 수정 2021-07-08 16:21
팬 환호에 손 들어 답하는 페더러의 모습. A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2021 윔블던 9일째 남자 단식 8강전 로저 페더러(6위·스위스)와 후베르트 후르카치(18위·폴란드)의 경기. ‘테니스 황제’ 페더러가 3세트 0-5 상황에서 마지막 서브를 준비하자 수많은 팬들은 일어서서 큰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황제의 포핸드 스트로크는 아쉽게 빗나갔고, 경기는 끝났다.

0대 3(3-6 6-7<4-7> 0-6)으로 맥없이 패배한 페더러는 지체 없이 가방을 챙겨 한 차례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환호에 답했다. 그리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양 어깨에 가방을 맨 채 서둘러 클럽하우스로 떠났다. 페더러가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관중석의 한 팬은 “1년만 더! 1년만 더!”라며 황제의 귀환을 간절히 요청했다.

하지만 다음 달이면 만 40세가 되는 페더러의 몸 상태는 더 이상 5세트 경기가 펼쳐지는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다툴 정도로 보이진 않았다. 페더러는 후르카치의 첫 서브에 고전했고, 포핸드에서만 18개의 언포스드 에러를 냈다. 두 번째 서브에서도 성공률이 35%에 그쳤다. 코트 구석구석을 찌르는 후르카치의 공격을 따라가기엔 두 발이 너무 무거워보였다.

머리를 감싸는 페더러. AFP연합뉴스

페더러도 이를 인식한 듯 경기 뒤 “그 모든 일(부상)을 겪은 뒤에도 윔블던 수준의 대회에서 여기까지 올라와 매우 행복하다”며 “내년에도 윔블던에 출전하고 싶지만, 내 나이에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진한 여운을 남기는 발언을 했다. 그렇게 페더러는 자신에게 영광을 안겨준 무대인 윔블던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경기를 마쳤다.

페더러는 지난해 두 번의 무릎 수술을 받고 코로나19 공백기를 통째로 날렸지만, 계속해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윔블던 복귀는 페더러가 재활을 강행한 가장 큰 동기 중 하나였다. 앞서 열린 프랑스오픈 16강전에서 몸 상태를 고려해 기권 선언한 것도 윔블던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만큼 윔블던은 페더러에게 의미 있는 장소였다. 1998년 주니어 남자 단식과 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윔블던에 데뷔한 그는 단 3년 뒤 센터 코트에서 처음 치른 16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자 5연속 우승에 도전하던 피트 샘프러스(미국)를 물리치고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2003년엔 결승에서 마크 필리포시스(호주)를 누르고 첫 번째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따내기도 했다. 그렇게 페더러는 윔블던 최다 우승자(8회)가 됐고, 메이저대회 전체를 통틀어서도 라파엘 나달(3위·스페인)과 함께 최다 우승(20회) 기록을 세웠다.

땀 닦는 페더러. AP연합뉴스

때문에 페더러가 스위스인임에도 수많은 영국 관중들은 페더러가 잔디 코트 위에서 선보이는 우아한 게임과 코트 위 존재감에 마치 홈 코트 같은 성원을 보냈다. 페더러는 성원에 힘입어 이번 대회에서 1977년 켄 로즈웰(호주) 이후 윔블던 최고령 8강 진출 기록을 세웠지만, 더 앞으로 나가기엔 힘이 부쳤다.

페더러가 2001년 그랬던 것처럼 돌풍의 주인공이 된 후르카치는 준결승에서 마테오 베레티니(9위·이탈리아)를 상대한다. 후르카치는 2019년 한 차례 베레티니와 맞붙어 승리한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페더러·나달의 메이저대회 최다 우승 기록을 따라잡는 노박 조코비치(1위·세르비아)는 통산 6전 전승을 기록 중인 데니스 샤포발로프(12위·캐나다)와 만난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