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스트레스 호소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유족 주장

입력 2021-07-07 14:57 수정 2021-07-07 15:10
서울대학교 입구. 국민일보DB

“한국의 미래가 따로 있나, 고개를 들어 서울대를 보라. 청소노동자를 과로로 죽인 서울대학교에 한국의 미래가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서울대학교의 유명 슬로건인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를 비꼰 비판이 제기됐다. 이는 지난달 26일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던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 것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지난 2019년 서울대에서 67세의 청소노동자가 숨진 지 2년 만이다.

이번 서울대 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유족과 노동조합 측은 노동자의 사망 원인이 서울대 측의 ‘직장 갑질’에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 지부 및 유족은 7일 낮 12시쯤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청소노동자 A씨 사망과 관련해 오세정 서울대 총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유족과 노조 측은 사망한 A씨가 고된 노동과 서울대 측의 갑질로 인해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A씨의 남편 이모씨는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지 10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씨는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로 학생들의 배달음식 주문이 늘면서 쓰레기의 양도 늘었다”며 “일이 많아져 1년 6개월 동안 고된 시간을 보냈지만 학교는 어떤 조치도 없이 군대식으로 노동자들을 관리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발언 중간중간 눈물을 쏟아내며 흐느끼기도 했다.

그는 “아내를, 엄마를 이 땅에서 다시는 볼 수 없지만 제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면, 출근하는 가족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이번 일로 누구도 퇴직당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학교는 근로자들의 건강을 챙기고 노사 협력으로 대우받는 직장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노조 측은 “고인은 돌아가시기 전 서울대 측으로부터 부당한 갑질과 군대식 업무 지시, 힘든 노동 강도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A씨가 근무했던 여학생 기숙사는 건물이 크고 학생 수가 많아 여학생 기숙사 중 일이 가장 많았다”고 주장했다.

또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쓰레기양이 증가해 A씨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기숙사에서 대형 100L 쓰레기봉투를 매일 6~7개씩 직접 날라야 했다”며 “병 같은 경우 무게가 많이 나가고 깨질 염려가 있어 항상 손이 저릴 정도의 노동 강도에 시달려야 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던 A씨는 과한 노동업무 뿐만 아니라 업무와 관련없는 시험을 치르고 점수를 책정받는 등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DB

이어 노조 측은 “이런 노동 강도 속에서 노동자들의 근무 질서를 잡기 위해 군대식 업무 지시와 함께 청소노동자들이 회의에 펜이나 수첩을 안 가져오면 감점하겠다고 협박했다”며 “또 학교 시설물의 이름을 한문으로 쓰게 하는 등 불필요한 시험을 보게 하고 점수가 낮은 노동자들에게 모욕감을 줬다”고 덧붙였다.

서울대의 후속 대응 방식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졌다. 노조 측은 “서울대는 A씨 사망에 책임이 없다는 듯 먼저 선을 그으면서 아무런 입장조차 밝히지 않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A씨 죽음은 저임금 청소노동자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장 내 갑질을 자행하는 관리자들을 묵인하고 비호하는 서울대는 A씨 유족에게 공식 사과와 함께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예방 대책이 마련돼야 서울대에서 산재 사고로 죽어가는 청소노동자들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유족과 노조는 이날 서울대 측에 ▲진상 규명을 위한 산재 공동 조사단 구성 ▲직장 내 갑질 자행한 관리자 즉각 파면 ▲강압적인 군대식 인사 관리 방식 개선 ▲노동환경 개선 위한 협의체 구성 등을 요구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최근 청와대에 올라온 국민청원. 국민일보DB

앞서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씨 가족은 A씨가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귀가하지 않고 연락이 닿지 않자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자살이나 타살 혐의점은 보이지 않는다”며 “과로사인지 등 여부는 (학교 측에서)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유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