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프들이 만든 춘천아트페스티벌이 20년 됐어요”

입력 2021-07-07 06:34 수정 2021-07-07 08:38
춘천아트페스티벌이 20회인 올해 춘천공연예술제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스태프와 예술가의 재능기부로 유지되어온 춘천아트페스티벌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끌고온 장승헌 예술감독(왼쪽)과 최웅집 총감독. 윤성호 기자

춘천아트페스티벌이 성년을 맞아 올해 춘천공연예술제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7월 13일~8월 21일 축제극장 몸짓과 춘천인형극장에서 화려한 잔치를 연다. 그동안 8월 둘째 주 5일간 열리던 것에 비교해 6배 이상 기간이 늘어난 축제에는 38개 단체, 196명의 예술가가 참여할 예정이다.

“20회를 끝으로 춘천아트페스티벌의 문을 닫으려고 했습니다. 그동안 스태프의 십시일반과 예술가의 재능기부로 꾸려왔는데, 축제를 계속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런데, 공공 지원이 거의 없이 운영되어 온 저희 축제가 춘천의 축제들 가운데 외부 평가 1위를 받은 덕분에 큰 규모의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그래서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대하게 치르게 됐습니다.”

2002년 춘천무용축제로 출발… 스태프와 예술가의 재능기부

춘천공연예술제의 장승헌 예술감독과 최웅집 총감독은 5일 국민일보와 만나 올해 축제 준비에 대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털어놓았다. 2002년 춘천무용축제로 출발한 축제는 3회째인 2004년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춘천아트페스티벌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게 됐다. 2002년 당시 국내 최초의 민간 무용 기획사 MCT와 국내 최초로 무대 기술 스태프들이 뭉쳐 만든 주식회사 스탭서울 컴퍼니를 각각 이끌던 장 예술감독과 최 총감독이 “기존 방식과 다른 형태로 의미 있는 축제를 만들어 보자. 예술가와 스태프 등 참여자들이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자 자신의 것을 내놓아 만들면 더 즐겁지 않을까?”라며 의기투합한 것이 축제의 시작이다.

무용 기획자 출신의 장 예술감독은 “2002 월드컵이 끝난 직후 최 총감독을 비롯해 서울발레시어터의 제임스전과 김인희 부부 등과 함께 월드컵의 열기를 무대로 가져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축제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 기술감독 출신의 최 총감독은 “베테랑 스태프들이 모인 스탭서울은 당시 여러 축제의 기술 분야를 맡았었는데, 주최 측이 돈을 아끼려다 아티스트가 부상을 당하는 경우를 보곤 했다”면서 “그래서 우리 스태프들끼리 돈을 갹출해 예술가들이 제대로 한번 놀 수 있는 실험적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은 10회까지 옛 춘천어린이회관의 야외무대를 활용했다. 축제 기간이 1~2일이라도 무대 준비기간은 5일 가까이 됐다. 사진은 2008년 춘천아트페스티벌이 무대 셋업을 준비하는 모습(위)과 실제 공연 모습. 춘천공연예술제 제공

축제 장소는 자연스럽게 춘천으로 결정됐다. 1989년부터 춘천마임축제와 춘천인형극축제가 열리는 등 춘천이 지역 도시로는 드물게 공연예술축제 인프라가 좋다고 봤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공연예술축제는 흔히 인구 30만 명 안팎의 도시에서 치를 때 효과적이라고 한다. 춘천은 도시 규모와 축제 인프라 면에서 제격이었다. 다만 춘천이 무용의 불모지였기 때문에 무용축제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공연은 무료로 진행하되 신청순으로 티켓을 배부하기로 했다”면서 “10회까지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춘천어린이회관의 야외무대를 활용했다. 의암호 수변에 자리 잡은 춘천어린이회관 야외무대는 계단식 좌석, 폭 20m x 깊이 40m의 무대는 물론이고 소음과 빛을 차단하는 환경이 공연하기에 제격이었다”고 설명했다.

10회까지 야외무대에서 열리다 11회부터 실내 공연장 중심으로

1회 축제는 32명의 스태프와 서울발레씨어터 등 4개 무용단이 참여했다. 춘천어린이회관 야외무대에서 하루 동안 열렸지만 제대로 된 무대를 만들기 위한 준비 기간은 5일이었다. 1회 축제가 호평을 받으면서 2회에는 이틀간 7개 무용단이 참여했다. 그리고 3회부터는 춘천아트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고 장르를 무용 외에 음악, 전통 등으로 넓히면서 10개 팀이 참여했다. 이후 2012년 춘천어린이회관이 춘천시에서 KT&G 소유로 바뀜에 따라 11회부터는 축제의 무대가 축제극장 몸짓 등으로 바뀌며 공연 기간이 5일로 늘어났다. 실내 공연장은 야외무대에 비해 스태프들의 품이 덜 들어 준비 시간이 적게 소요되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무대 기술 스태프들이 뭉쳐 만든 주식회사 스탭서울 컴퍼니를 이끌고 있는 최웅집 춘천공연예술제 총감독. 20년간 장승헌 예술감독과 함께 춘천아트페스티벌을 이끌어왔다. 윤성호 기자

최 총감독은 “춘천아트페스티벌은 스태프의 명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탭서울 소속의 무대·조명·음향 감독들을 비롯해 친한 스태프들이 축제에 참여할 겸 춘천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일정상 춘천에 오지 못하는 스태프들은 비싼 기자재들을 선뜻 빌려준다”면서 “좋은 스태프가 있으면 예술가의 기량이 훨씬 좋아지기 마련이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은 그런 스태프의 정신으로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은 그동안 공모를 통해 예술가와 스태프, 자원봉사자를 모았다. 축제 측이 제공하는 것은 한림대 기숙사에 마련한 숙박과 교통비 정도. 다만 스태프와 그 지인들이 수박 등 각종 과일, 옥수수, 감자 등을 박스째 보내주는 덕분에 축제 내내 먹거리가 풍성한 것과 축제 종료 후 인근 휴양림에서 다 같이 춘천의 명물인 막국수와 닭갈비를 뜯으며 마무리하는 ‘무박 2일 송별회’는 춘천아트페스티벌의 묘미다.

역대 참여 스태프는 총 744명, 예술가는 총 209단체 827명

2002년 당시 국내 최초의 민간 무용 기획사 MCT를 이끌던 장승헌 춘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은 최웅집 총감독과 함께 20년간 축제를 이끌어왔다. 윤성호 기자

장 예술감독은 “평소 공연을 보러 갔다가 예술가들에게 춘천아트페스티벌에 참가할 수 있는지 은근히 얘기를 꺼낸다. 물론 거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안 온 단체는 있어도 한 번 참가하면 2~3번 이상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춘천아트페스티벌에 오면 예술가들이 예우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면서 “예술가들이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춘천에 왔다가 스태프들이 준비한 것을 보고는 공연 전까지 열심히 리허설을 한다. 재능기부라고 해서 대충 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한다”고 웃었다.

지난 19회까지 적지 않은 스태프와 예술가가 다녀갔다. 올해 20년을 기념해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역대 참여한 스태프는 총 744명, 예술가는 총 209단체 827명에 달한다. 스태프의 경우 2008년 111명이 최다 참여했고, 비대면으로 열린 지난해 36명으로 최소 참가였다. 평균적으로는 64명이었다. 예술단체의 경우 중복을 빼면 누적 190개로 무용 120개, 음악 70개, 서커스·전통·연극·마임 19개 순이었다. 안무가 권령은이 7회로 가장 많았고 이어 안무가 장은정과 이경은이 각각 6회로 뒤를 이었다.

춘천아트페스티벌의 역대 스태프(위) 및 예술가(아래) 참가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 올해 20년을 기념해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역대 참여한 스태프는 총 744명, 예술가는 총 209단체 827명에 달한다. 춘천공연예술제

스태프 가운데는 두 감독과 스탭서울 관계자 외에 이도희 사진작가가 10회 이상 참여해 눈길을 끈다. 최 총감독은 “매년 참가하다시피 한 이도희 작가를 비롯해 최영모 우종덕 박상윤 등 국내 최고 사진작가들이 참가해 공연 사진을 찍어줬다. 예술가들 가운데 예산 문제로 제대로 된 공연 사진을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춘천에 오면 기록용 영상과 함께 최고 수준의 공연 사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축제 측에서 개런티를 못 주는 만큼 이런 부분에서라도 예술가를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코로나19로 대면 공연 대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축제를 치르게 됐을 때는 예술가에게 고화질의 공연 영상을 촬영해 줬다. 파주 스튜디오와 몸짓 극장에서 작품당 4~5차례씩 촬영했는데, 제작비 문제로 영상 제작 엄두를 내지 못하던 예술가들이 매우 기뻐했다”고 덧붙였다.

지자체 지원 받으며 예술가 개런티 지급 및 공연 유료화 시도

올해 춘천공연예술제는 7월 13∼17일에는 20회 기념 특별무대를 시작으로 8월 21일까지 무용 음악 연극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주제는 ‘맞닿음’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위축된 공연 환경 속 과거와 미래, 공연과 관객이 만나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의 의미를 담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한림대 기숙사를 빌릴 수 없지만, 지원금 덕분에 예술가에게 개런티를 제공한다. 축제는 온·오프라인으로 병행할 예정인데, 영상은 편집 등을 거쳐 가을에 온라인으로 스트리밍 할 예정이다.

올해 춘천아트페스티벌 20년을 기념해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역대 참여한 스태프는 총 744명, 예술가는 총 209단체 827명에 달한다. 예술가 가운데서는 안무가 권령은이 7회로 가장 많이 축제를 찾았다. 이도희 사진작가

춘천공연예술제는 올해부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지난 2019년 축제의 창립 정신인 ‘십시일반’을 뜻하는 사단법인 텐스푼을 출범한 데 이어 최근 지자체의 예산을 공식적으로 받게 되면서 국내 대표적 공연예술제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됐다. 예술가와 스태프에 대한 개런티의 지급과 함께 공연의 유료화도 그 일환이다.

최 총감독은 “공연에 애정을 가진 뜻있는 스태프들이 없었다면 20년은 불가능했다. 개인적으로 갈망하던 사단법인도 설립됐고, 지자체의 예산도 공식적으로 마련돼서 짐을 던 느낌이다”면서 “나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뒤편으로 물러나려고 한다. 워낙 이 축제에 올바른 생각을 가진 스태프들이 많이 참가하고 있어서 든든하다”고 피력했다.
올여름 춘천공연예술제를 보러 춘천으로 휴가를 가야 할 것만 같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