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합니다. 사고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난달 경기도의 한 원룸에 들어선 김새별(46)씨는 고개를 숙인 채 마지막 인사를 읊조렸다. 묵념을 마친 김씨는 원룸 구석구석을 소독하기 시작했다. 핏자국이 남아 있는 침대, 어질러진 바닥, 싱크대 아래에는 빈 소주병들이 놓여 있었다. 악취가 가득한 방에서 김씨는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의 대표 김씨는 ‘유품정리사’다. 2009년부터 1000건이 넘는 의뢰를 받아 고독사나 살인사건 현장을 특수청소하고 유품을 유족에게 전달했다.
유품정리라고 하면, 대개 고인이 생전에 아꼈던 물건이나 사진, 편지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김 대표가 마주한 유품정리 현장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대다수 현장은 오랫동안 방치된 상태다. 혈흔과 부패물이 타일, 벽지로 흘러들어 굳어있기 일쑤고, 집안 곳곳에서 구더기도 나온다. 청소 중 심한 악취가 몸에 배 점심시간 식당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금전적 가치가 없는 유품은 유족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김 대표는 “집주인에게 받은 번호로 유족에게 전화했더니, 20년 동안 연락 안 한 사이니 다 버리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챙겨 드렸더니 버리라고 했지 않냐며 짜증을 냈습니다”고 전했다.
지난 3월 정리했던 40대 남성의 사연은 잊히지 않는다. 남성은 임신한 여자친구를 위해 외제차도 사고 돈도 송금했다. 하지만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진 남성은 혼자 살던 방에서 3개월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유품정리를 하던 김 대표는 방 한편에서 태어날 아이를 위해 남성이 남겨둔 육아용품을 찾아냈다. 김 대표는 “남성의 사연이 방송을 탔어요. 그런데 고인의 동생에게 얘기를 들었는데 무속인이었던 여자친구는 사실 임신한 것이 아니었대요. 돈 받으려는 거짓말이었던 거죠. 아기용품은 동생에게 전달하기 위해 보관 중입니다”라고 전했다. 김 대표는 지난 2015년 유품정리의 사연과 얘기들을 모아 에세이집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펴냈는데, 최근 에세이를 모티브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가 인기리에 스트리밍 되기도 했다.
김 대표가 만난 외로운 죽음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을 그리워했던 고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경제적 도움이나 위로보다는 따뜻한 안부 인사 한마디였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외면한 이들의 마지막 이사를 돕는 유품정리사 김새별 대표는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누구나 죽음의 문턱에서 옛 기억을 떠올리더라고요. 최고의 죽음은 최선을 다해 잘 사는 겁니다. 하루하루 재밌게 가족과 추억을 남기세요. 술들 좀 그만 마시고.”
사진·글=이한결 기자 alwayss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