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여성도서관이 ‘남성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에 따라 남성의 도서 대출을 허용키로 한 것을 두고 온라인에서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충북 제천시가 운영하는 이 도서관은 ‘남성 차별’이라는 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받아들여 이달부터 남성에게도 도서 대출 서비스를 허용하기로 했다. 2011년에 이어 최근 한 민원인이 제천여성도서관을 대상으로 “공공 목적의 도서관을 여성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차별”이라는 취지의 진정을 냈고, 이를 인권위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간 남성들의 이용 허용 요구에 도서관 측은 “여성 전용 도서관 운영은 기증자 의사를 따르는 것으로 남녀 차별 문제와 무관하다”고 해명해 왔다. 하지만 인권위는 “제천여성도서관이 행정력과 공적 자원으로 운영되는 공공시설임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남성의 이용을 배제한다”며 “기증자의 의사를 존중하더라도 그 의사는 참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인권위의 판단에 6일 “증여자의 기부 목적과 도서관 설립 목적보다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남성의 불편함이 더 중요하냐” “‘여성 혐오’는 무시한 채 ‘여성 전용’은 없애려 한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천여성도서관은 여성으로 살면서 느낀 교육 기회 차별을 해소해 달라며 고(故) 김학임 할머니가 삯바느질로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해 설립된 것이다. 김 할머니는 11억원 상당의 부지를 기부했고 시가 예산 8억원을 들여 도서관을 설립, 1994년 개관했다.
여성 커뮤니티 회원들은 “설립자의 취지가 ‘여성의 교육 기회 차별의 해소’인데 20대 남성의 민원으로 인해 남성이 사용 가능한 도서관이 된 것이 말이 되냐”며 “일반 도서관이 여성 전용인 것도 아니고 여성의 교육 기회 차별로 인해 세워진 뜻이 있는 도서관을 역차별로 항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인권위 홈페이지에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또 “누구보다 인간의 인권을 신경 써야 하는 인권위가 여성의 인권에 대해 이토록 무신경한 권고와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등의 반응도 나왔다. 여성 커뮤니티 ‘여성시대’엔 이처럼 인권위에 항의한 인증 글 수십 개와 관련 댓글 수백 개가 달리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민원들은 확인이 됐다”며 여성들의 거센 반발을 인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민원 성격에 따라 답변이 나오는 기간은 다르지만, 최장 기간은 28일이다. 답변 기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들이 여성전용 도서관을 사용하지 않으면 심각한 교육이나 독서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는 근거가 있지 않은 이상 기부자의 뜻을 존중하는 게 옳다”며 “만약 심각하게 지장을 준다고 하더라도 유족들과 상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기부자의 뜻을 존중하지 않으면 큰 규모의 기부들이 가진 좋은 취지들을 살리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성차별의 문제를 떠나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한 맥락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도서관이 현저하게 부족하지 않다면 유족의 뜻을 존중하는 게 옳다는 지적이다. 제천시립도서관은 제천여성도서관에서 1.6㎞ 떨어진 거리에 있으며, 차로 5분, 도보로 25분 걸린다.
제천여성도서관의 남성 도서 대출 서비스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청원인은 5일 ‘제천여성도서관의 남성 도서서비스의 중단, 폐지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올렸다.
청원인은 “개인의 사적인 의견은 공공시설 운영 목적을 반하여 우선시될 수 없다”며 “제천에 시립도서관을 포함한 공용도서관은 수도 없이 많다. 인권위는 여성의 안전한 공간을 단지 있지도 않은 차별이라며 빼앗고 남성에게 권리를 손에 쥐여주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냐”고 주장했다.
이어 ‘제천 여성도서관의 남성 도서 서비스를 중단, 폐지할 것’ ‘제천 시립 도서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버스 노선을 확대할 것’ ‘제천시는 고 김학임 할머니의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기부금 11억원과 손해배상을 포함한 모든 것을 돌려드릴 것’을 요구했다.
이 청원은 6일 오전 게재된 지 하루 만에 사전 동의자 100명을 넘기고, 7일 오전 9시 기준 3만 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다.
‘여성전용’을 문제 삼는 남성들의 행동과 이를 수용한 인권위 결정에 대해 여성들이 참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올해 2월 안산도시공사는 지상 15층 아파트 2개 동 규모 선부동 행복주택의 청년 몫 200호실의 입주자격을 여성으로 한정한 모집 공고를 발표했다. 선부동 행복주택은 여성 근로자 임대 아파트인 ‘한마음임대아파트’가 노후화되자 행복주택으로 전환해 재건축된 것으로 성차별 논란이 제기된 이후 인권위에 진정이 접수됐다.
지난 5일 인권위는 “청년 행복주택이 입주자격을 여성으로 제한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을 경우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여성 커뮤니티 회원들은 “여성 전용은 여성 우대 시설이 아닌 여성 차별의 결과물”이라며 “여성 전용이 불합리한 것 같으면 남성 전용을 만들어 달라고 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예솔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