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는 그 자체로 각본 없는 드라마다. 각자의 목표를 위해 매 순간 땀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전라도 해남 땅끝마을에 배드민턴에 진심인 열여섯 소년, 소녀들이 있다. 치정이나 살인 사건은 없다. 소름돋는 반전이나 빌런(악당)도 없다. 그 대신 우리가 잊고 지냈던 순수와 열정이 주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SBS 월화드라마 ‘라켓소년단’이 자극적인 소재의 막장 드라마들 사이에서 ‘저자극 유기농 힐링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라켓소년단’은 첫 방송부터 지난 10회까지 5~6%대 꾸준한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지상파 월화드라마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자극적인 소재에 익숙한 20~49세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에피소드들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꿈을 좇는 사람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시선을 드라마는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보여준다.
등장 인물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성장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통해서 성장한다. 편견을 깨고, 자신을 뒤돌아보고, 주변을 살핀다. 아이들은 좋은 어른을 통해 성장한다. 최고의 성과보다 최선의 노력이, 결과보다 과정이 값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모두의 ‘찐성장기’인 셈이다.
젊은이들을 도시로 떠나보내고 남은 농촌의 어르신들, 그리고 각자의 이유로 다시 농촌을 찾은 젊은이들이 대립하다가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모습도 그린다. 시청자들은 현대 사회에서 찾기 힘든 공동체의 모습과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공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떤 메시지를 줄 때 강하게 주는 방법도 있지만 이런 ‘순한’ 방법으로 줄 때 더 깊이 있게 다가올 수 있다”면서 “슈퍼파워를 가진 영웅이나 악당이 등장하지 않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는 점, 보고 있으면 편안한 마음이 들어 시청자들이 치열한 일상 속에서 치유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소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어른 배우’로는 김상경과 오나라가 출연해 드라마의 중심을 잡는다. 여기에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으로 얼굴을 알린 탕준상과 ‘동백꽃 필 무렵’에서 필구 역으로 사랑 받은 김강훈, ‘경이로운 소문’과 ‘스카이 캐슬’에 출연한 이지원, 그리고 신예 배우들이 가세했다. 박호산, 박해수 등 쟁쟁한 카메오들이 매회 출연해 열연한다.
‘라켓소년단’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포츠인 배드민턴을 본격 소재로 삼은 국내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출연진 전원은 작품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장장 6개월에 걸쳐 실제 배드민턴 특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한 정보훈 작가가 극본을 썼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