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감리교회가 지난달 30일 버밍엄에서 열린 총회에서 동성결혼과 동거 연인을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영국의 교회들이 속속 동성결혼의 문을 열고 있다.
소니아 힉스 신임 총회장은 이날 “오늘은 영국 감리교회의 역사적 날”이라며 “차이를 존중하고 서로를 지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힉스 감독회장은 영국 감리교 사상 첫 흑인 여성 감독회장이다. 영국 감리교회는 4000개 교회, 16만4000여명의 성도가 소속돼 있으며 영국에서는 네 번째 규모의 교단이다. 총회에서는 254 대 46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동성결혼을 인정했다.
총회에서는 결혼의 정의를 ‘결혼 관계에 자유롭게 들어온 두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일생 결합’으로 개정하자고 발의됐다. 동거 연인에 대해서는 교회가 그들의 상호 헌신과 사랑을 축하하고 수용하며 인식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번 결의안을 반대한 ‘감리교복음주의연합’(Methodist Evangelical Together) 회장 데이비드 헐 목사는 “오늘은 감리교회에 매우 슬픈 날”이라며 “우리가 어디까지 왔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보는 일은 정말 가슴 아프다.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철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은 5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동성애에 대한 영국 감리교회의 결정 소식이 안타깝다”며 “한국 감리교회는 영국 감리회가 어떤 결정을 하든 동성애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반대 입장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 감독회장은 “이런 결정들을 들으며 많은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교회가 동성결혼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퀘이커교, 유니테리언총회, 자유기독교회, 스코틀랜드성공회, 연합개혁교회 등은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13년 7월 동성결혼을 합법화해 영국 여왕의 서명을 받아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서 2014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영국 감리교회도 이 같은 사회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감리교는 수년 전부터 ‘동성애자 결혼을 축복하는 기도와 예배 형식에 관한 지침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영국 성공회는 공식적으로 동성결혼을 금하고 있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촉구하는 교단 내 요청은 날로 확산되고 있다. 당장 지난 2일 리버풀 교구의 폴 베이스 주교는 “영국 성공회가 ‘젠더 중립 결혼 법규’를 채택해 동성 커플을 축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2018년에는 성공회 옥스퍼드 교구에서 성소수자 가이드를 발간하기도 했다. 가이드에는 성직자들이 성적 지향이나 젠더 아이덴티티가 신앙으로 변화될 수 있다거나, 동성애가 신앙의 미성숙이라고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침이 언급돼 있다. 또 동성애자들이 성만찬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성소수자 교회에서 리더십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동성결혼 인정 교단
영국 | 감리교회, 퀘이커교, 유니테리언총회, 자유기독교회, 스코틀랜드성공회, 연합개혁교회 |
미국 | 미국장로교(PCUSA), 그리스도연합교회, 성공회, 복음주의루터교회, 연합감리교(8월 최종 결정) |
유럽 | 노르웨이 복음주의루터교회, 프랑스 개신교회, 스웨덴 국교회 |
북미· 호주 | 캐나다장로교총회, 호주연합교회 |
동성결혼 인정은 마치 쓰나미처럼 서구 교회를 휩쓸고 있다. 2015년에는 미국장로교(PCUSA)가 동성결혼을 수용했다. 당시 PCUSA는 ‘한 여자와 한 남자 사이의 계약’으로 규정돼 있던 결혼에 대한 정의를 ‘두 사람 사이의 계약’으로 개정했다. 미국 그리스도연합교회도 두 남성 또는 두 여성의 결혼을 공식 인정했다. 미국 성공회는 2018년 총회에서 동성 커플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결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미국 복음주의루터교회도 동성결혼을 인정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총 38개주와 워싱턴 DC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미국연합감리교회(UMC)는 지난해 동성결혼 동성애자 성직 허용 등 관련 정책에 따른 의견 차이로 감리교 전통을 지키려는 보수 교단과 성소수자 정책을 수용하는 진보 교단으로 분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UMC를 두 진영으로 나뉜 뒤 각 교회의 성소수자 정책 수용 여부와 입장에 따라 교단 선택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교단 분리는 다음 달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열리는 UMC 총회에서 결정된다.
이외에도 노르웨이 복음주의루터교회가 2016년부터 동성결혼 주례를 허용했다. 단 이를 원치 않는 사제는 거부할 권리가 있다. 노르웨이는 1993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동성 간 시민결합을, 2009년엔 동성결혼을 허용했다.
프랑스의 개신교회는 2015년 동성 커플에 대한 주례를 허용했다. 스웨덴 국교회도 2009년 국교회 소속 교구의 동성결혼 주례를 허용하고, 결혼의 정의를 기존 남녀간에서 두 사람 간으로 개정했다. 덴마크 교회 등도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스코틀랜드교회는 지난 5월 에든버러에서 열린 총회에서 목회자들과 집사들이 동성 커플과 결혼할 수 있는 법안의 초안을 승인했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2015년부터 동성결혼을 한 동성애자 목사를 받아들였다.
캐나다장로교 총회는 지난달 6일, 동성결혼과 동성애자 안수 등을 허용했다. 호주연합교회(UCA)도 2019년 동성결혼을 허용했다. 당시 UCA는 결혼에 대한 정의를 ‘남자와 여자의 결합’에서 ‘사람의 결합’으로 조정했다.
신상목 장창일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