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향한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행된 지 2년을 맞은 4일 정부가 핵심품목에서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등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며 연일 애국심을 강조했다. 경색된 한·일 관계를 둘러싼 부정적인 견해가 곳곳에서 나오지만 양국 정부 모두 주요 선거를 앞둔 만큼 관계 개선을 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 “일본의 수출규제는 오히려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강하게 만들었다”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DNA를 어김없이 발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먼저 일본에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우리 현명한 국민은 흔들리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는 그간의 부당한 조치를 철회하고 현안 해결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을 보이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지난 2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부장산업 성과 간담회’에 참석해 “국내 산업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100대 핵심품목에 대한 일본 의존도를 25%까지 줄였다”며 “핵심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대해선 자립력을 갖추고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뭐든지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서도 외교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일본과 약식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일본의 거절로 막판에 무산됐고, 도쿄올림픽에 문 대통령이 참석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회담하는 방안도 고려됐지만 현재로선 성사 가능성이 희박하다.
일본 내에선 성과 없이 견해차만 확인하는 정상회담이 될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이 많아 회담에 소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도 “대통령이 올림픽 개막식만 참석하고 회담 없이 돌아오면 국내 여론이 어떻게 되겠느냐”며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일본에서도 수출규제를 질타하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사히신문은 전날 사설을 통해 “재판에서 확정된 (강제징용) 배상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거액의 손실을 전혀 관계도 없는 일본 기업이 보게 할 이유는 없다”며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계책의 극치”라고까지 평가절하했다.
국내에서는 과거사 문제와 수출규제로 관계가 악화함에 따라 대북정책에서 일본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됐다는 한계가 거론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전직 의원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한·미·일 공조를 중시하는 데 대해 “문재인정부의 외교에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가 한·일 관계를 등한시한 것”이라며 “일본의 대미 설득력이 우리를 앞선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일 정부 모두 집권연장 여부를 결정짓는 선거를 앞두고 있어 서로를 때리며 지지율을 높이는 전략을 멈추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주요 대선주자들이 도쿄올림픽 지도에 일본 자국 영토로 독도를 표기한 것을 두고 ‘도쿄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진단이다.
한 일본 소식통은 “문재인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현상관리를 하겠다는 게 일본 내 분위기이고, (강제징용 기업을 상대로) 자산 매각명령이라도 나오게 되면 추가 규제까지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등 일본 내 한국 불신이 매우 심하다”며 “일본은 9월 총선, 한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 (관계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예상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