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실수로 담은 사과···헌재 “절도로 본 것은 잘못”

입력 2021-07-04 14:55

마트 자율 포장대 위에 놓인 다른 사람의 사과를 무심코 가져간 행위를 절도로 판단해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한 것은 잘못됐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A씨가 “기소유예 처분이 부당하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고 4일 밝혔다. 절도의 고의성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했음에도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 A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B씨는 2019년 10월 서울 도봉구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자율 포장대에서 구입한 물건을 챙기는 과정에서 실수로 사과 1봉지를 빠트리고 귀가했다. 같은 마트에서 장을 본 A씨는 식료품을 빈 박스에 옮기다 B씨가 놓고 간 사과봉지를 함께 담아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서야 사과봉지를 마트에 두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된 B씨는 다음날 경찰에 도난신고를 했다. 경찰은 마트에 등록된 회원정보조회 결과 등을 통해 A씨에게 연락했고, 곧바로 출석한 A씨로부터 사과봉지를 임의제출 받았다. 이후 검찰은 A씨의 절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을 했으나, A씨는 검찰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기소유예 처분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A씨가 노령이고 후두암과 불면증에 시달린 점 등을 고려하면 순간적으로 자신이 사과를 구입했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를 면밀히 살펴보면 A씨가 고의적으로 물건을 훔칠 의도가 없다고 본 것이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고, 오히려 경찰에게 당시 상황을 되묻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CCTV 영상에서도 A씨가 사과봉지를 유심히 살펴보는 등 절도로 의심되는 행위는 하지는 않았다. 헌재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 “검찰이 경찰 수사기록을 면밀히 살피지 않은 탓에 A씨의 의사를 막연히 확장해석한 결과”라고 지적하며 A씨 손을 들어줬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