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편견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2019년 국립건강정신센터가 전국 만 15~70세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9년 국민 정신건강지식 및 태도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약 64.5%의 응답자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위험한 편이다’라고 답했고 ‘정신질환자 이용 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와도 받아들일 수 있다’라는 질문에는 35.6%만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문제는 이런 편견이 ‘생각’에 그치지 않고 관련 법·제도 등에 반영돼 실제 정신질환자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차츰 개선되는 와중에 법·제도가 오히려 그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다. 국민일보는 공공시설 운영과 관련한 지자체 자치법규(조례, 규칙)를 중심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적 조항을 취재했다.
문제는 이런 편견이 ‘생각’에 그치지 않고 관련 법·제도 등에 반영돼 실제 정신질환자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차츰 개선되는 와중에 법·제도가 오히려 그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다. 국민일보는 공공시설 운영과 관련한 지자체 자치법규(조례, 규칙)를 중심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적 조항을 취재했다.
“나도 정신질환자인데 못 들어가?”…부산시립도서관 논란
“「부산광역시립도서관 운영규칙⌟ 제4조에 의거, 정신질환자, 전염성 질환이 있는 자,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냄새 나는 자는 도서관 이용을 제한할 수 있으니 이 점 양해하시고 도서관 이용 예절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2일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 있는 부산광역시립부전도서관(부전도서관)을 방문한 A씨는 이 같은 문구가 적힌 안내 배너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신질환자 당사자로서 도서관 출입이 제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A씨는 국민일보에 “정신질환이 있고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으로서 해당 안내문이 차별적으로 느껴졌고, 불쾌감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또한 “운영규칙에 기재된 세 가지 요소(정신질환, 전염성 질환, 냄새) 모두 외적인 요소로 선별하기에 모호한 부분이 있기에 어떤 맥락에서 이와 같은 규칙이 만들어졌는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결국 A씨는 배너를 촬영한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리며 불쾌한 마음을 내비쳤다. 해당 트윗은 1000회 이상 리트윗되는 등 화제를 모았다. 네티즌들은 “나도 정신질환자인데 저 도서관에 못 들어가냐” “정신질환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다” 등 분개하는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해당 사건은 부전도서관 측 실수에서 비롯된 오해로 드러났다. 부산광역시 교육청에 따르면 부산시는 지난 3월 정신질환자의 공공도서관 출입을 제한했던 「부산광역시립도서관 운영규칙⌟ 제4조를 삭제하기로 했다. 또 해당 규칙이 적용되는 10개 도서관에서 이 같은 안내문을 모두 치우도록 지시했다.
부전도서관 관계자는 “본래 폐기해야 하는 물건이 맞다”며 “관내 공사로 창고 물건을 정리하다가 감독자가 모르는 사이 배너가 밖에 나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 부전도서관을 비롯한 부산광역시의 시립도서관 10곳에 정신질환자의 출입을 제한하는 규칙이 적용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자의 공공시설 출입을 제한하는 지자체 자치법규(조례, 규측 등)는 부산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질환자 막는 지자체 조례…“잠재적 범죄자 취급”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해보면 전국 지자체의 자치법규 중 22개 조항이 정신질환자의 도서관 입관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자치법규가 적용되는 도서관은 약 90개에 달한다. 지방의회, 박물관, 기념관, 과학관, 테마파크, 예술의전당 등 60개 이상의 공공시설에서도 자치법규를 통해 정신질환자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자치법규들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잘못된 지식에 기초하고 있다. 조항에 사용된 용어에서부터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상당수의 자치법규는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과 같은 법적·의학적 용어 대신 ‘정신이상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백치’나 ‘정신병자’와 같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멸칭’으로 여겨지는 단어를 사용한 조례도 있다. 이 같은 단어들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표현일 뿐 아니라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비전문적 용어인 만큼 조례에 사용되기에 부적절하다.
여러 공공시설에서 정신질환자의 출입을 제한하는 근거는 ‘안전 문제’에 있다.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간인 만큼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거나 이용에 방해된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선제적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인천광역시교육청 관계자는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마련한 규정”이라며 “정확한 의사소통이 어려워 보이거나 직원과의 대화에 집착하는 증세를 보이는지 등을 모니터링하며 정신질환 유무를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신질환자가 일반인보다 더 위험하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2018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신장애인 범죄율(0.136%)은 전체 범죄율(3.93%)의 30분의 1 수준으로 매우 낮다. 강력범죄를 기준으로 비교해도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 범죄율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홍선미 교수는 “돌발적인 행동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건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훨씬 낮다”라며 “모든 정신질환자는 잠재적 범죄자라는 비합리적인 사회적 신념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정신질환자가 발작이나 돌출행동, 중얼거림 등으로 다른 시민들의 공공시설 이용을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도 편견이 섞여 있다. 예컨대 가장 대표적인 정신질환인 ‘조현병’의 증상은 양성과 음성으로 구분된다. ‘양성 증상’은 보통 사람에게는 없지만 조현병 환자에게는 나타나는 증상으로 망상, 환각·환청, 긴장성 행동 등이 포함된다. 반면 ‘음성 증상’은 무기력증이나 무력증, 감정표현 감퇴, 사회와의 단절 같은 ‘결핍 증상’을 가리킨다.
조현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더 ‘극적’으로 보이는 양성 증상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사실 양성 증상은 대체로 약물을 통해 쉽게 조절되며 조현병을 앓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음성 증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경상대 사회복지학과 서미경 교수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양성 증상은 대학병원 직원 등이 아니면 보기 어렵다”며 “실제 조현병 환자는 겉으로 봤을 때 오히려 침울하거나 무기력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즉 대중적인 인식과 달리 정신질환자 중 실제로 이상 행동을 통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이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관찰을 통한 식별 불가능…행위중심 규정 만들어야
애초에 공공시설 직원을 비롯한 외부인이 관찰을 통해 정신질환자를 구분해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정신질환은 성별·나이·신체적 장애 등과 달리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밝히지 않는 한 알아차리기 어렵다. 정신질환의 증세와 수준도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렇기에 의학적 지식이 없는 직원이 관찰을 통해 정신질환자의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생각은 허황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공공시설 안전을 위해서라면 ‘행위 중심’ 조항을 마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모든 정신질환자를 포괄적으로 막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설 이용을 방해하는 자’ ‘타인에게 위협을 가할 우려가 있는 자’ ‘관내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 등을 기준으로 시설 이용을 제한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정신질환자의 도서관 출입 제한 조항을 삭제 결정한 부산시는 “행위 중심 조항을 인용해 공공시설 안전을 담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충분히 실효성 있는 대책이 존재하는데도 정신질환자의 출입을 제한하는 건 차별이다. 해당 조항들은 정신질환자를 더욱더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나아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 이러한 편견은 초기 정신질환자들이 병원 방문을 기피하게 만들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서미경 교수는 “정신질환자들이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병원이나 정신질환 센터에 가기 꺼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지역 사회에서 더불어 살며 재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인화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