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길 위 백구, 두고 가면 평생 후회하겠다 싶었죠” [개st하우스]

입력 2021-07-03 09:07 수정 2021-07-03 09:07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제보자는 퇴근길 고속도로에 버려진 채 로드킬 위기에 놓인 백구를 발견했다. 제보자 김지연씨 제공

“퇴근시간대에 차도 옆 갓길을 서성이는 백구를 봤어요.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들에 금방이라도 치일 것 같았고요. 그냥 두고 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후회와 죄책감이 클 거라고 생각했어요. 위험한 줄 알지만 갓길에 차를 세우고 녀석을 구하러 갔습니다.”

지난 4월 늦은 밤, 경기도 양주의 한 외곽도로. 무섭게 질주하는 퇴근길 차량들 사이로 유난히 새하얀 백구 한 마리가 위태롭게 떠돌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차도 주변에서 휘청휘청, 조금만 엇나가도 로드킬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처지. 하지만 일과를 마친 고단한 퇴근길, 운전자들에게 차창 너머 백구를 챙길 여유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죠.

모두가 외면하던 그때, 백구의 곁으로 다가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연의 제보자, 성악가 김지연(33)씨였죠. 그리고 이 만남은 로드킬과 안락사 문턱까지 갔던, 백구의 2개월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백구를 안아줬어요”

갓길에 차를 세운 지연씨는 문제의 백구에게 다가갔어요. 가까이서 본 녀석 처지는 더욱 안쓰러웠습니다. 지연씨는 “깨끗한 목덜미에 목줄 자국이 선명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백구는 막 버려진 것 같더라”면서 “백구 심정이 얼마나 비참할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고 하네요.

곧장 동물구조대에 구조요청을 한 지연씨는 요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백구를 보호해야 했어요. 녀석이 공격적인지, 경계심이 강한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지연씨는 조심스럽게 백구에게 다가갔습니다.

"고마워요, 안아줘서" 갓길 위 백구는 처음 만난 제보자의 품에 선뜻 몸을 맡겼다. 방금 유기된 듯 목덜미에 목줄 자국이 선명했다. 제보자 제공

다행히 백구는 무척 온순하고 사회성이 뛰어난 친구였어요. 지연씨가 손짓하자 백구는 꼬리를 흔들며 지연씨를 반갑게 맞아주었죠. 지연씨는 “도로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백구에게 어깨동무를 했는데,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정도로 얌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어찌나 잘 따르던지 갓길 주차단속을 나온 경찰관이 “개 주인이냐”고 물어볼 정도였답니다.

곧이어 도착한 구조대에 백구를 무사히 인계하면서 백구 이야기는 이렇게 해피엔딩을 맞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제보자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듣게 됩니다.

로드킬 넘기자 안락사 위기 …동물구조 이토록 어려웠다

로드킬 위기를 벗어난 백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죽음의 카운트다운’ 안락사였습니다. 백구가 입소한 위탁 보호소는 서울, 경기에서 버려진 개가 하루 20~30마리씩 쏟아져 들어오는 비참한 상황에 놓인 곳. 수용공간이 부족해지면, 구조한 지 10일이 넘은 유기동물들은 공간 확보 차원에서 안락사 대기 명단에 올라갔죠.

백구가 입소한 경기도 양주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견사 모습. 서울 및 수도권의 유기, 유실견이 하루 평균 20~30마리씩 몰려들어 시설은 항상 포화 상태다. 동물구조단체 팅커벨프로젝트 제공

"로드킬 위기를 겨우 넘겼는데..." 백구는 구조 이후 임시보호처를 찾지 못해 안락사 대기명단에 올랐다.

“체중 20kg의 중대형 백구를 입양 보내려면 시간을 더 벌어야 했어요.”

백구를 당장 입양 보낼 수는 없더라도 일단 죽음을 늦출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 끝에 지연씨는 묘수를 생각해냈습니다. 그것은 입양 가능성 높은 다른 유기견의 입양을 돕는 것이었어요. 따져보면 부족한 수용공간을 확보하는 게 안락사 목적이므로, 비교적 입양 가능성 높은 품종견 혹은 어린 개체의 입양을 돕는다면 입양이 성사된 수만큼 백구의 안락사 차례를 미룰 수 있기 때문이죠.

온라인에 올라온 단 한 장의 프로필 사진으로 유기동물의 입양 성패가 갈리는 상황. 지연씨는 백구를 비롯한 50여 마리 유기견의 사진을 예쁘게 보정해서 SNS에 홍보했습니다. 그 결과 2개월 만에 16마리가 가족을 만났고, 그만큼 백구의 안락사 순번도 늦춰졌죠.

"단 한장의 사진으로 생사가 결정됩니다" 동물 구호 애플리케이션 '포인핸드'를 통해 본 유기동물들 모습. 시민봉사자들은 자신이 돌보는 동물이 최대한 간절하게 보이도록 사진 편집에 최선을 다한다. 포인핸드 캡쳐

하지만 결국 보호소 관계자로부터 “백구의 안락사 차례가 왔다”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지난 몇 달간 입양 홍보에 매달린 지연씨는 결국 지치고 맙니다. 사설보호소에 백구를 위탁하고 싶었으나 코로나19로 공연 수입이 70%나 줄어서 위탁비를 감당할 수 없었답니다. 지연씨는 “주변 사람들이 ‘그러다 쓰러진다’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포기하라’더라”고 털어놓았어요.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하나 생각한 그때, 하늘이 도운 걸까요. SNS에서 백구 소식을 읽은 한 대학생이 임시보호(임보) 신청을 했습니다. 지난달 16일, 보호소를 나온 백구는 중성화와 예방접종을 마친 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엄재온(23)씨의 포근한 빌라에서 임시보호 생활을 시작했어요. 도로에서 구조된 지 2개월 만의 일입니다.

"두 달 동안, 백구를 임보하고 싶습니다" 지난달 8일, 백구의 현 임시보호자가 지연씨에게 보낸 SNS 메시지. 백구가 안락사 대기명단에 올라온 시점에 온 반가운 연락이었다고. 제보자 제공

"임시보호해줘서 고마워요, 누나" 안락사 위기의 백구를 위해 선뜻 임시보호를 신청한 대학생 엄재온(23)씨.

해맑은 백구, 네오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 너는 아니? 보호소를 나온 백구는 마냥 해맑게 웃고 있었어요. 지연씨는 백구에게 네오(Neo)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줬답니다. 위기를 넘어 행복한 새(neo) 삶을 살라는 의미였죠.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준 네오 모습.

네오는 동네 반려견들과 사이좋게 교감할 정도로 사교성이 좋다.

지난달 29일, 국민일보는 서울 강서구의 임보처에서 네오를 만났어요. 진돗개는 경계심 강하고 사나울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네오는 해맑고 사회성 좋은 ‘핵인싸’ 견공이었답니다. 동네 소형견들이 편하게 냄새 맡도록 엉덩이를 내밀고, 다가오는 사람들의 손길을 즐겼답니다.

네오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은 축구공이에요. 처음 만난 동네형을 졸라서 함께 공놀이도 즐겼답니다.

"기자 형, 축구 못하네~" 기자가 드리블하는 공을 가볍게 빼앗는 네오 모습.

네오는 그동안 참 많은 물음표를 마주쳤어요. 만약 고속도로에서 네오가 제보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안락사를 앞두고 임시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마침내 남은 마지막 질문, 과연 평생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요? 웃음을 잃지 않는 6살 백구, 네오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해맑은 백구, 네오가 가족을 기다립니다

- 진도믹스 / 6살추청 / 수컷(중성화O) / 20kg
- 사람을 잘 따르고 먹는 걸 좋아함
- 리트리버 같은 성격

*입양 및 임시보호를 희망하는 분은 아래의 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 http://naver.me/5eGx7QtK



이성훈 기자 김채연 인턴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