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계열사 사장단을 불러 모았다. 신 회장은 고부가가치 사업을 고려하는 투자,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성을 사장단에 주문했다.
신 회장이 주재한 ‘2021 롯데 VCM(Value Creation Meeting)’은 1일 비대면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송용덕·이동우 롯데지주 대표, 4개 부문 BU(Business Unit)장, 각 사 대표이사와 임원 130여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신 회장은 최고경영자(CEO)의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신 회장은 “실적은 개선되는 추세지만 저와 CEO 여러분이 변화와 혁신을 위해 더욱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신사업 발굴과 핵심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부가 가치 사업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롯데 VCM은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 진행됐으나 올해 하반기에는 7월 중순에 진행하던 예년과 달리 보름가량 당겨졌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롯데그룹은 코로나19 위기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며 지난해 그룹의 두 축인 ‘유통’과 ‘화학’ 모두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그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나마 올 들어 롯데케미칼이 부진을 딛고 1분기 매출 4조1683억원, 영업이익 6238억원으로 흑자 전환을 이루며 실적을 견인했다.
하지만 유통 부문은 침체가 너무 길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롯데쇼핑 1분기 매출은 3조8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 줄었고, 영업이익은 618억원으로 18.5% 늘었으나 여전히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도 신세계그룹에 밀리면서 ‘유통 공룡’ 롯데가 유통 시장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 회장은 “CEO 여러분은 회사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도 책임지고 있다”며 “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시설, 연구·개발(R&D), 브랜드, IT 등에 대한 투자가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핵심 인재 확보와 육성에 대한 주문도 나왔다. 신 회장은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실패를 숨기는 것,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실패조차 없는 것”이라며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핵심인재 확보에 우리 사업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말했다.
현장 경영 강화도 강조됐다. 신 회장은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제품과 서비스를 직접 이용해보며 개선 활동을 하고 있는지, 현장 직원들과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지 등을 물으며 현장 경영의 중요성을 거듭 밝혔다.
그는 “의미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해야 한다”며 “그 해답은 늘 고객의 관점에서, 고객이 있는 현장에서 찾을 수 있음을 명심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롯데는 이날 VCM에서 ‘ESG(환경·사회문제·지배구조) 경영 선포식’을 열었다. 2040년 탄소중립 달성, 계열사 이사회 산하 ESG위원회 구성 추진, CEO 평가에서 ESG 관리 성과 반영 등이 주요 내용이다. 롯데의 미래가치를 담은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 ‘오늘을 새롭게, 내일을 이롭게(New Today, Better Tomorrow)’도 발표했다.
신 회장은 “ESG 경영은 재무적 건전성에 기초해 구축돼야 함에도 실적에 소홀하는 등 ESG 경영의 기본 개념을 오해하거나 진정성에 의심을 갖게 하는 식의 활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