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실은 스리랑카 선박 침몰…고래·돌고래·거북이 떼죽음

입력 2021-07-01 17:15
화학물질 등이 담긴 컨테이너 1486개를 싣고 있던 싱가포르 화물선 엑스프레스 펄호가 지난 2일 스리랑카 연안에서 화재로 침몰하고 있다. 스리랑카 공군 홈페이지

각종 화학물질을 싣고 있다 스리랑카 연안에서 12일간 불에 타고 침몰한 싱가포르 화물선 엑스프레스 펄호 사건으로 고래와 돌고래, 바다거북이가 최소 200마리가 죽어 해양 재난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됐다.

1일 스리랑카 현지매체들에 따르면 스리랑카 법무장관실은 수도 콜롬보에 있는 법정에서 열린 엑스프레스 펄호 선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 “독성 화학물질을 실은 선박이 6월 초 침몰한 이후 최근 몇 주 동안 해변으로 바다동물 사체가 밀려오고 있다”며 “침몰한 선박과 연관된 해양 오염으로 고래 4마리와 돌고래 20마리, 바다거북 176마리 등 최소 200마리가 죽었다”고 밝혔다.

스리랑카 해양환경보호국(MEPA)은 “바다동물의 떼죽음이 엑스프레스 펄호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명백하다”며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 죽은 거북이는 2마리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MEPA는 생태학자 등 전문가 41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해양 오염에 따른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조사를 진행 중이다.

스리랑카 인근 바다에는 바다거북 5종이 살고 있다. 특히 푸른바다거북과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은 스리랑카 해변에 3월부터 6월까지 알을 낳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침몰한 선박에서 누출된 화학 물질이 바다동물의 떼죽음을 부른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30년 넘게 바다거북 보존 활동을 해왔던 투산 카푸르싱허는 “거북이의 입과 목, 소화기관 등에서 출혈이 발견됐고 등껍질에도 화상의 징후가 있다”고 말했다.

해양생태학자 랄리트 에카나와크는 화재의 특성과 화학물질의 양으로 미뤄볼 때 최소 400마리의 거북이가 죽어서 바다에 가라앉거나 깊은 바다로 떠내려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콜롬보항 인근에서 입항을 기다리던 싱가포르 선적 엑스프레스 펄호는 지난 5월 20일 선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내부 폭발 등으로 불길은 12일만에 진압됐지만 선박은 진화 과정에서 서서히 침몰했다.

이 선박엔 인도에서 선적한 질산 24t 등 컨테이너 1486개가 실려 있었고 일부 컨테이너에는 작은 플라스틱 원료 조각 약 700억개가 담겨 있었다. 이 플라스틱 조각은 쇼핑백 등 산업제품의 원료로 바다동물이 섭취 시 소화기관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에도 연료유 350t가량이 실려 있었다. 현재 사고 인근 스리랑카의 해변은 각종 파편과 플라스틱 조각으로 뒤덮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리랑카 당국은 이 사건을 “역사상 최악의 해양 참사”라고 규정하고 러시아인 선장을 환경오염 등 혐의로 법정에 세우고 선주사에 잠정 손해배상금 4000만 달러(약 447억원)를 1차로 청구하는 한편 정확한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다.

다르샤니 라한다푸라 MEPA 국장은 “실제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엑스프레스 펄호 소유자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