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반항과 고집이 센 아이들이 있다. “싫어” “안 해”라는 말은 입에 달고 살며, 화나 짜증을 많이 낸다. 그런 일들로 자주 야단을 맞게 되고 사랑받지 못하니 반항은 점점 심해진다. 아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지만 이를 말로 설득하기 쉽지 않다.
P와 엄마는 얼굴 표정이 굳은 채 진료실에 들어온다. 아마도 들어오기 전에 야단을 맞은 듯하다. 거의 눈물이 그렁그렁할 정도의 표정인데 묻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짜증만 낸다. P는 기분이 나빠도 직접 말로 표현하는 일은 별로 없다고 했다. 일단 화가 나 있음을 내가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먼저 감정을 읽어 주니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한다. 굳은 표정의 엄마 역시 단단히 화가 났지만 그 감정을 많이 억제하고 아이에게 평소에 느꼈던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리고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지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논리적으로 이야기했다. 힘든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엄마였다. 육아서도 많이 읽으시고 이론을 토대로 아이를 분석하고 해결책도 많이 연구 하고 실제 실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변화가 없다.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는 점점 힘들어지는 듯하다.
인류는 언어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언어적 논리를 통해 많은 이론의 체계를 만들어 왔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규범 규칙, 법률이 모두 언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어를 통한 효과를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있다. 아니 인류는 그렇게 되도록 훈련되어져 있다. 그래서 책을 통해 배운 대로 했을 때 예상된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화가 나고 지나치게 좌절한다. 아이에게 책에서 배운 대로 가르치고 말로 설득했지만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이 아이는 말이 먹히지 않는 아이야. 좌절이야. 어쩌면 좋을까? 구제 불능일까?’라며 개탄한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당신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온 것이 어떤 문자적 지식의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보다는 바람직한 행동을 시도해 보고, 행동을 통한 긍정적인 결과를 경험하면서 그 행동을 강화하고 그렇게 학습되고 발전한 것은 아닐까?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행동은 효과가 있고 어떤 행동은 그렇지 않음을 아이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느끼도록 해주어야 한다. 부모가 버락 오바마 이상의 감동적인 연설(?)이나 감동적인 말로 행동을 이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행동을 유발했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을 유지하기란 몹시 어렵다. 그 보다는 우선 아이가 바람직한 행동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행동을 세분화해서 쉬운 행동을 하게 유도하고 칭찬을 해주어 강화시킴으로써 그 바람직한 행동을 할 동기가 생기고 그런 행동이 확장, 유지 되도록 한다.
예컨대 말 안 듣는 아이에게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걸 가르칠 때는 장황한 말보다는 아이가 티슈 박스에 가까이 있을 때 ‘엄마한테 티슈 한 장만 뽑아다 줄래?’라고 부탁해보자. 어렵지 않은 일이니 아마도 아이는 그 행동을 할 것이다. 그 다음 엄마는 고마움을 표시하고 칭찬을 해 준다. 이런 식으로 작은 행동으로 나누어서 적절한 보상을 해주어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몸소 체험해 보게 한다.
작은 일이라도 고마움의 표현을 받거나 칭찬을 받으며, ‘뿌듯함’을 경험케 하는 것보다 좋은 행동 수정 방법은 없다. 어떤 것을 하지 않게 하기 보다는 어떤 것을 새로 배우게 하는 것이 더 쉽다. 즉 반항하는 아이가 반항을 하지 않게 하기 보다는 순응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쉽고, 욕을 하는 아이에게 욕을 하지 않게 하는 것보다는 무엇이 화가 나는지 다른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쉽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 뭐든 싫다고 하는 아이 # 말 안 듣는 아이 # 반항하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