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2시 15분쯤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서문주차장으로 아반떼 차량 한 대가 주변 제지를 뚫고 빠르게 진입했다. 차량에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성 4명이 타고 있었고, 상공을 향해 권총을 쏘며 위협을 가했다. 차량은 주차장 한 쪽에 멈춰섰고 남성들은 황급히 차량에서 빠져 주변으로 흩어졌다. 곧이어 잠실종합운동장 서쪽 상공에 정체불명의 드론 한 대가 출몰했다. 이 드론은 주차장까지 이동한 뒤 상자 하나를 땅에 떨어뜨렸다. 살상용 폭발물이었다.
땅에 떨어진 폭발물은 곧바로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사방이 연기로 뒤덮였고 폭발로 인해 잠실종합운동장 시설물에 화재가 발생했다. 인근을 지나가던 행인 2명이 폭발에 휩쓸리며 큰 부상을 입었다. 현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고, 잠실종합운동장에 있던 수많은 인파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혼돈 상태에 빠졌다. 테러리스트들은 폭발물로 다수를 살상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다는 목표로 테러를 자행했다.
인근에서 순찰하다 폭발음을 들은 경찰이 현장 상황을 인지하고 곧바로 테러 발생을 보고했다. 송파경찰서 112종합상황실은 112타격대 등 경찰초동조치팀에 테러가 발생했다는 점을 알리고 긴급대응에 나섰다. 또 화재진압, 부상자 응급후송 등도 발 빠르게 이뤄졌다. 경찰특공대도 출동해 테러 진압에 들어갔다. 폭발물 탐지견을 동원해 테러범이 버리고 간 차량을 수색했고, 차량 안에 있던 추가 폭발물을 발견했다. 이어 폭발물처리반(EOD)이 안전하게 폭발물을 제거했다. 추가 테러 위험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경찰은 주변을 통제하며 시민들을 안정시켰다.
현실이라면 국가 차원의 비상사태가 발령될 수 있는 긴급한 상황이었지만 이는 서울경찰청이 드론을 활용한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6개 기관 합동훈련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대테러 관계 기관 소속 90여명과 서울 일선 경찰서 경비과장들이 참여했다.
최근 드론을 활용해 공공기관이나 기간시설,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방식이 새로운 테러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경찰 단독으로 테러 대응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경찰은 수방사와 소방청, 환경청 등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드론 테러에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장하연 서울경찰청장은 “최근 국내적으로 양극화로 인한 갈등 및 사회 불만 세력에 의한 테러 위협이 있고, 국제적으로는 드론 등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유형의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며 “수도 서울의 안전을 위해 만반의 준비와 긴밀한 협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드론 테러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기술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미승인 드론 비행을 사전에 감지해 테러 위협을 차단하는 식이다. 실제 이날 훈련에서는 드론 작동을 멈출 수 있는 재밍(전파방해)시스템인 ‘안티 드론건(재밍건)’ 시연도 이뤄졌다. 드론이 가까워져 오자 현장에 대기하던 경찰특공대 특공대원 중 한 명이 하늘을 향해 총을 쐈다. 소리도 나지 않고 총알도 나가지 않았지만 잠실종합운동장을 향해 날던 드론은 동작을 멈추고 맥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찰은 이번 훈련에 앞서 서울 지역 31개 경찰서의 경비과장 또는 경비계장을 대상으로 드론 테러 관련 교육을 했다. 이들은 테러나 재난 등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초동 조치를 담당한다.
경찰은 이번 훈련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에도 유관기관 합동으로 드론 테러 대비 훈련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허찬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은 “주기적으로 합동 훈련을 개최해 테러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며 “모든 기관이 테러 감시자가 되어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