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이 업종 구분 없이 같은 금액으로 적용된다. 경영계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업종에 상대적으로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자고 했지만 노동계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경영계는 내년 최저임금 동결안(8720원)을 제시하면서 역대 최고액인 1만800원을 요구한 노동계에 맞불을 놨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6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심의했다. 이날 박준식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내년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안건을 표결에 부쳤으나 부결됐다”며 “업종별 차등 적용에 대한 반대가 15표로 과반을 넘었다”고 밝혔다. 찬성과 기권은 각각 11명, 1명이었다. 작년과 비교하면 반대 입장이 1명 더 늘었다.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해 적용하는 것은 경영계의 해묵은 과제였다. 경영계는 숙박·음식업 등 코로나19 장기화로 타격을 입은 업종 구분이 가능해져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최저임금제도 취지에 안 맞는다며 반대했고 일부 공익위원도 노동계의 손을 들어주면서 34년 만의 업종별 차등 적용은 최종 무산됐다. 사용자 위원들은 즉각 성명을 내고 “예년의 관행을 앞세워 단일 최저임금제만 고수하는 것은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절박한 현실과 바람을 외면한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경영계가 업종별 차등 적용을 다시 요구하지 못하도록 최저임금법 제4조를 전면 폐지하자고도 했다. 현행법에는 ‘사업 종류별로 구분해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고, 이는 최저임금위원회 심의를 거쳐 고용부 장관이 정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 위원인 박희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은 “오늘은 최저임금 심의를 마무리해야 하는 법정 마지막 날인데 차등 적용 논의로 시간만 허비했다”며 “경영계는 합리적 이유나 근거도 없이 주먹구구식 주장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업종별 차등 적용’ 결정에서 판정패한 경영계는 내년 최저임금 동결안을 제시하며 본격적인 맞대응에 나섰다. 2019년(-4.2%)과 지난해(-2.1)에는 삭감을 요구했지만 올해는 최근 2년간 1~2% 역대 최저 수준의 인상률을 고려해 동결안을 내놨다. 경영계는 한국의 최근 5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53.9%이지만 노동생산성은 9.8% 상승하는 데 그쳤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중소기업 10곳 중 4곳은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고용을 감축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했고 최저임금이 10% 인상될 때 약 30만명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학계 연구결과가 있다고도 했다.
사용자 위원 간사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의 임금 지급 능력은 한계에 직면했다”며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와 고용 주체인 소상공인, 영세기업 모두 최저임금 안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인상요인은 없으므로 근로장려세제와 그 밖의 복지제도 개선책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구직자 10명 중 8명이 내년에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사업주만의 왜곡된 시각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