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선 출마 선언에 靑 침묵…속내는 ‘부글부글’

입력 2021-06-29 17:10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권 도전을 선언한 것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밝힐 입장이 없다. 청와대가 언급한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에 대해 논평하는 행위 자체가 선거 개입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이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윤 전 총장 관련 질문을 받자 “지금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청와대는 지난 3월 4일 윤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했을 때도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라는 짧은 입장문만 냈다.

청와대 내부에선 윤 전 총장이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이 국민을 약탈하려 한다”며 문재인정부를 원색 비판한 것과 관련해 불쾌해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문 대통령이 직접 윤 전 총장을 중용했기에 현 정부로선 그의 대권 도전이 뼈아픈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유배당한 윤 전 총장을 서울중앙지검과 검찰총장으로 파격 발탁했다. 2019년 7월 검찰총장 임명식에선 “우리 윤 총장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의 신뢰와 기대를 바탕으로 고속 승진한 윤 총장의 대권 도전을 두고 청와대 일각에선 ‘배신 당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야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감사원장 사퇴 등 거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대권 행보를 위해 중도 사퇴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보는 청와대의 속내도 곱지 않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월 최 전 원장을 임명하며 “자신을 엄격히 관리해 오신 분”이라고 평가했고 청와대는 “각종 미담이 많다”고 추켜세웠다. 그랬던 최 전 원장이 ‘월성 1호기’ 감사 등을 두고 정권과 마찰을 빚다 대권 행보에 돌입한 것은 공직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게 청와대의 시각이다.

문 대통령이 발탁한 두 공직자가 임기 전에 중도 사퇴하고, 야권의 유력 대권 후보로 떠오르는 것을 두고 청와대도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할말은 많지만 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라고 했다.

김외숙(왼쪽) 인사수석과 김진국 민정수석이 지난달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천대엽 신임 대법관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한편 청와대는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 김외숙 인사수석을 포함한 인사라인 교체를 요구한 것을 두고 당청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전날 “청와대 인사시스템을 돌이켜봐야 한다”고 했다. 백혜련 최고위원 역시 “변명하긴 어려울 것 같다. 김 수석이 총책임을 질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민주당 선거관리위원장도 “김 수석이 스스로 거취 결정을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결함을 이미 드러냈다”고 했다. 대선을 앞둔 민주당이 공직자 부동산 문제를 두고 민심 이반을 경계하며 청와대에 쇄신의 모습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외숙 인사수석(오른쪽)과 김진국 민정수석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민주당의 공세에 대해 “당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민주당의 의견을 계속 듣고 있다”고 전했다. 인사 검증 문제를 두고 당청이 건전한 의견 교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청와대 일각에선 물밑에서 논의해도 될 사안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민주당에 대한 서운함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지난달 인사청문정국에서 임혜숙·노형욱·박준영 장관 후보자 3인 가운데 최소한 1명은 낙마해야 한다는 민주당 초선 의원들의 입장을 수용해 박준영 장관 후보자를 사퇴 조치했다.

임기 말을 맞은 문 대통령도 공공연히 ‘이제는 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가 당의 목소리를 최대한 정책에 반영하는 상황에서 당청이 원팀이 되어 단합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생각이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