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일 자치경찰제 전면 도입을 앞두고 인사권 협의를 마친 9곳의 시·도 자치경찰위원회(자경위) 중 6곳은 경찰의 징계권한을 국가경찰에 재위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징계권 등 인사권을 재위임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자치경찰제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일보가 29일 입수한 ‘전국 시·도자치경찰위윈회 인사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인천과 대구, 광주, 경북, 경남, 대전 6곳의 자경위는 경감 이하 자치경찰에 대한 징계 권한을 시·도 경찰청장에게 재위임키로 최근 결정했다. 그 중 경남은 경정 전보와 경사 이하 승진만 자경위가 결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국가경찰에 재위임키로 했다. 반면 자경위가 인사권을 적극 행사하기로 한 곳은 이날 기준 강원(전 인사권)과 전북(휴·복직 권한 제외)뿐이었다. 인사권엔 자치경찰에 대한 전보와 파견, 휴·복직, 직위해제, 징계, 승진 등을 결정하는 모든 권한이 포함된다.
지난해 12월 31일 신설된 경찰공무원 임용령에 따라 자치경찰 인사권은 시·도 경찰청장에서 지자체장, 자경위로 위임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자경위는 예외적으로 인사권을 기존대로 시·도 경찰청장에게 다시 위임할 수 있다.
아직 협의를 마치지 않은 지역까지 확대하면 자치경찰 인사권을 국가경찰로 재위임하는 지역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인사권을 국가경찰에 위임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자치경찰 도입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치사무에 대한 통제권을 주기 위해 자경위에 인사권을 준 것인데, 이 통제권을 다시 국가경찰에 넘겨버린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분쟁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경찰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는 “징계권을 재위임한다는 것은 징계 결과를 두고 분쟁이 발생했을 때 행정 소송 등 분쟁 당사자 될 수 있기 때문에 자경위가 이를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자치경찰제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수사경찰로 사무를 나눈다는 취지다. 국가경찰은 정보 보완 외사 등 국가 안위에 필요한 전국 규모의 업무를 수행하고 수사 경찰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지휘를 받아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된다. 자치경찰은 주민밀착형 치안 활동을 담당한다.
자치경찰 출범 논의가 시작된 뒤로 인사권을 포함한 자치경찰 업무 범위를 두고 국가경찰과 지자체 간 신경전은 계속돼왔다. 전국 18곳의 자경위 중 인사권 협의를 끝낸 지자체도 9곳에 불과하다. 서울은 자경위 인사권 범위를 논의할 회의를 아직 한 차례도 열지 못했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