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8578일, 23년 7개월동안 사용했다. 1997년 11월부터 세상과 나를 이어 주었던 019로 시작하는 2G 019 휴대폰과 이별을 한다. 휴대폰 대중화 시대가 열린 1997년 10월 1일 2G PCS라는 방식으로 서비스가 제공되자 마자 비싼 가격과 예약대기라는 과정을 거쳐 평생번호를 외치던 3사 중에서 LG사의 2G 019 번호를 사용해 왔다.
그동안 이동통신 3사는 하나의 통신사만 고집해 온 충성고객에 대하여는 별다른 혜택이 없는 대신에 기기변경이나 번호이동을 하는 고객들에게는 각종 할인과 금품제공을 서슴지 않아 왔다. 그럼에도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내 번호를 유지하겠다는 고집으로 통신사와 휴대폰 번호를 그대로 유지해 왔다.
어쩌다 “아직도 019 번호가 있나요?”, “통화가 돼요?”, “왜 010으로 안 바꿔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첫사랑 애인한테 전화 올까 봐”라든가 “빚 받을게 있어서”라고 농을 치기도 한다. 어떤 휴대폰 판매사원에게는 ‘호갱도 이런 호갱은 못 봤다’는 말도 들었다.
우리는 예전의 획일성이 강조되는 소품종 대량생산 사회에서 이제는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수인번호 24601로 대표되는 것처럼 어떠한 숫자는 개인에게 간절한 추억과 상징성을 담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집전화는 1968년 당시 체신부 전화국에서 설치해 준 개인 소유권과 이동권이 부여된 백색전화로 무려 54년째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신청만 하면 설치해 주고 있지만 당시에는 동네에 한 두대밖에 없는 개인별 재산목록이어서 설치비용이 웬만한 집 한 채 값이었고 거래가격이 두 채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개인적인 사연들이 함께한 전화번호 때문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정부에서 마지막 2G 서비스 종료를 최종 승인한 지난 달 25일까지 01X를 사용하고 있는 2G 고객이 14만명이나 된다. 지역별로 2G 통신망이 끊어지고 있는 지금도 2G 서비스로 대표되는 019, 011, 017, 018 번호를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해당 01X번호를 계속 사용하게 해 달라고 헌법소원까지 불사하는 사람들이 가입해 있는 네이버 카페 ‘010통합반대운동본부’에도 3만9980명이 가입되어 있다. 이들이 01X 번호를 고집하는 각자에 따라 여러가지 사연이 있을 수 있다. 국내외 고객과의 거래번호, 입학이나 취업, 결혼 기념으로 사용하게 된 번호, 부모님이 사용해 왔던 번호일 수도 있겠다.
일부에서는 이 사람들이 010 전환조건으로 금품을 노리고 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거나 4G LTE나 5G 기술을 거부하는 불량고객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사람들은 010 전환조건으로 별다른 이익을 취할 것도 없거니와 2G 서비스를 고집하고 4G나 5G 서비스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2G망을 없애고 4G나 5G로 통합해도 좋지만 그동안 몇 십년 동안 사용해 왔던 전화번호 01X 번호만 계속 사용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지금도 01X 번호로 통화를 하면 010으로 자동 연결되는 변경 전 01X 전화번호 표시나 01X 번호로의 자동 착신전환 서비스를 보면 세계 최고 IT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기술적으로도 전혀 문제없어 보인다. 그래서 고객센터에 요금을 추가로 내도 좋으니 번호표시 자동전환을 계속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가 무안만 당했다.
이미 이달 11일부터 지역별로 마지막 2G망들이 끊어지고 있고 이번 주면 우리나라에서 01X 번호가 영영 사라지게 된다. 나의 일방적 구애에도 불구하고 자의 아닌 타의로 일방적인 이별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 아니라 헤어지면 다시 돌아올 날이 없는 일방적인 회자별리(會者別離)인 셈이다. 이번 별리가 매우 아쉽고 쓰리고 아프다.
김종국 한국전력기술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