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 한글 금속활자 등 1600여점, 인사동 항아리서 쏟아졌다

입력 2021-06-29 10:30 수정 2021-06-29 11:17
서울 인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문화재청 제공

서울 도심인 종로구 인사동에서 훈민정음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 한글 금속활자 등 1600여점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이와 함께 기록으로만 전해져 온 조선 전기 과학유산인 천문시계 부품 등 세종시대 과학유산 흔적도 대규모 발굴됐다.

문화재청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수도문물연구원은 탑골공원 인근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 인사동 79번지를 발굴 조사해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을 비롯해 물시계 부속품 주전, 일성정시의, 화포인 총통(銃筒) 8점, 동종(銅鐘)을 찾아냈다고 29일 밝혔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중요유물 언론공개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금속활자와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은 도기 항아리에 담긴 채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일성정시의와 총통, 동종은 항아리 주변에서 여러 조각으로 나뉜 상태로 출토됐다.

이번 발굴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유물은 금속활자다. 한자 활자 1000여점과 한글 활자 600여점이 함께 나왔는데, 조선 전기의 다양한 금속활자가 한곳에서 발견된 건 처음이다.

1434년 갑인자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금속활자. 문화재청 제공

구텐베르크가 144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개발할 무렵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유물도 발굴됐다.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제작한 해의 육십갑자를 이름으로 붙이는데, 1434년 제작했다는 갑인자(甲寅字)를 비롯해 1455년에 만든 을해자(乙亥字), 1465년 활자인 을유자(乙酉字)로 보이는 유물이 확인됐다.

한글 금속활자 중에는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적으로 사용된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활자와 한문 사이에 쓰는 한글 토씨인 ‘이며’나 ‘이고’를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이른바 ‘연주활자(連鑄活字)’ 10여점도 있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다양한 크기의 한글 금속활자가 출토됐다”며 “크기와 뒷면을 깎은 모양새를 보면 활자가 각양각색”이라고 전했다. 이어 “활자 상태는 대부분 온전하지만 일부는 불에 녹아 엉겨 붙어 있었다”면서 “아직 금속활자 분석이 끝나지 않았는데, 종류가 다양해 인쇄본을 찍을 때 사용한 조선 전기 활자의 실물이 추가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시계 부속품인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 문화재청 제공

이와 함께 자격루와 같은 자동 물시계에서 시간을 알리는 시보(時報) 장치를 작동시키는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도 발견됐다. 이 제품은 잘게 잘린 상태로 발견된 주전은 동그란 구멍이 있고 ‘일전(一箭)’이라는 글씨를 새긴 동판,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한 구슬 방출 기구로 구성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 나오는 주전 관련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추정대로 주전이 맞는다면 세종 20년인 1438년 제작된 경복궁 흠경각 옥루나 중종 31년인 1536년 창덕궁에 새로 설치한 보루각 자격루의 부속품일 가능성이 있다. 옥루는 현존하는 부재가 전혀 없고, 자격루는 물통 일부가 남아 국보로 지정된 상태다.

이번에 일부 모습을 드러낸 ‘일성정시의’는 낮에 해시계로 사용하고,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한 도구다. ‘세종실록’에는 1437년 일성정시의 4개를 제작했다고 기록됐지만 확인된 적은 없었다.

소형 화기인 승자총통 1점과 손잡이를 부착해 쓰는 소승자총통 7점으로 구성된 총통과 ‘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이라는 글자가 적힌 동종 등도 발견됐다. 총통은 1583년, 1588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동종은 글자를 바탕으로 1535년 4월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양식상 15세기 후반에 제작한 ‘전 유점사 동종’이나 ‘해인사 동종’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모든 유물은 1588년 이후에 같이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않은 것 같다”며 “보존처리와 추가 연구를 거치면 조선 전기 인쇄술과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