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전 총리와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민주당 정통성’을 앞세워 양자 간 단일화에 나서기로 했다. 당내 주류인 친문(친문재인)·친노(친노무현) 세 결집을 통해 비주류 이재명 경기지사에 맞서는 반(反)이재명 연대 전략을 본격화한 것이다. 다른 후보들의 가세로 이재명 대 반이재명으로 전선이 확대될 경우 당내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총리와 이 의원은 2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다음 달 5일까지 단일화를 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나흘 뒤 예정된 예비경선(컷오프) 일정보다 단일화를 먼저 마치는 속도전이다.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등록 첫날부터 단일화 카드를 선제적으로 던지면서 이 지사에 대한 집중 견제에 나선 것이다.
두 후보는 특히 “민주당 적통 후보 만들기의 장정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2017년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와의 과열 경쟁으로 친문과 갈등을 빚은 이 지사를 견제하고 동시에 친문 진영의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전 총리는 “민주당의 정통성을 계승해 민주 정부 4기를 열어가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으로 도덕적 품격, 경제적 식견, 국정능력을 갖춘 좋은 후보를 만드는 일에 뜻을 모았다”며 “승리의 드라마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는 일단 개문발차식으로 단일화 논의를 시작한 뒤 다른 후보들을 끌어모으는 방식으로 반이재명 전선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이 의원 측 전재수 의원은 다른 반이재명계 후보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다음 달 9일 컷오프(단계)에 들어가기 전 4일의 여지를 남긴 것은 그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일화 방식과 관련해선 “담판이든, 결단이든, 여론조사든 상상할 모든 방법에 대한 가능성이 다 열려있다”고 전했다.
노골적인 반이재명 연대 움직임에 이 지사 측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캠프 소속 한 의원은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후보 없이 경선 승리만을 위한 연대는 의미가 없다”며 “정통성으로 경선에서 이겨보겠다는 건 철 지난 여의도 문법”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경선 이후 민주당 원팀 기조를 만들기 위해 공개 비판은 자제했다.
이 지사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이 순순히 반이재명 연대로 뭉칠지도 미지수다. 당장 최근 지지율 상승세에 오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박용진 의원은 후보 간 연대보다는 독자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반이재명 연대가 당 주류의 확고한 지지세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후보들 역시 전략적으로 이 지사를 지지할 수도 있다.
정 전 총리가 반이재명 연대 선점에 나서자 지지 기반이 겹치는 이낙연 전 대표 측의 견제구도 날아들었다. 이 전 대표 측 한 의원은 “당장 예비후보 등록도 안 끝낸 상황에서 단일화 논의에 나서는 건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인 움직임”이라며 “적어도 예비경선을 통해 당원들에게 후보 선택의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 반이재명 구도로 결선투표까지 치르는 난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커지자 우려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경선 이후 두 진영이 화학적 결합에 실패하면서 본선에서 지리멸렬하게 패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수도권 한 초선의원은 “송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역시 비슷한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며 “경선 과정의 분열을 얼마나 잘 추스르냐가 대선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