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현직 검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의 위상 강화가 현실화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압수수색을 진행한 경찰은 영화 ‘베테랑’에서 배우 황정민이 연기한 열혈 형사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검찰의 ‘수사 가로채기’에서 벗어나 직접 수사로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지난 23일 서울남부지검 소속 A부장검사 사무실 등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경찰은 앞서 사기 및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수산업자를 조사하던 중 “현직 부장검사 A씨와 총경급 경찰 간부 B씨 등과 친분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산업자와 부장검사 사이 금품 거래 내역이 있는지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압수수색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B총경도 경찰의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압수수색한 사실은 맞다”면서도 “나머지 피의사실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검사 사무실에 대해 강제 수사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해 경북의 한 지청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졌지만 검사실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첫 강제수사인지를 두고 경찰청 관계자는 “검사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처음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은 의미를 둘 사안이 아니다”라며 “수사 대상에 따라 수사를 하는 것이고 영장이 발부됐기 때문에 진행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달라진 경찰의 위상을 확인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특히 압수수색을 진행한 경찰은 영화 ‘베테랑’ 속 열혈 형사 역할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베테랑 형사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형사는 강력범죄수사대 조직 개편 이전인 광역수사대부터 근무해 해당 부서 경력이 10년을 넘는다.
경찰이 현직 검사에 대한 직접 수사가 가능해졌다는 점을 두고 경찰에서는 “이제는 검사라도 위법 행위를 하면 경찰의 강제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월 검·경 수사권 조정 이전까지만 해도 경찰이 검사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체포, 구속 영장을 신청해도 대부분 검사가 법원에 청구하지 않았다. 경찰이 개시한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해 수사 주체를 바꾸는 ‘가로채기’식 수사가 비일비재했다. 2012년 11월 다단계 사기범인 ‘조희팔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뇌물수수 혐의로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반려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특임검사를 임명하면서 검경이 크게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이뤄진 검찰에 대한 첫 경찰의 강제수사인만큼 경찰이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을지도 관건이다. 또 해당 사건에 얽혀있는 B총경의 혐의 역시 경찰로서는 부담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아무래도 수사권 조정 이후 검사 사무실을 압수수색 한 건 처음이다 보니 이번 사건을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